[인人터뷰-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임금피크제, 사업장 특성에 맞게 자율로 도입해야” 기사의 사진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심각한 현안에 대해 말할 때에도 늘 밝은 표정을 지었다. 김 위원장은 “(임금피크제를 위한) 취업규칙상 근로조건의 일방적 저하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의 선례를 배워 노조의 경영 참여를 보장한다면 기업 투명성이 높아지고, 그러면 노조가 많은 것을 양보함으로써 노사 간 신뢰가 두터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김태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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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가 결렬된 이후 노동개혁의 요란한 구호들은 잦아들고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란만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기준 변경 등 당장 경영계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급급해 한다. 그래서 임금피크제를 통해 경영계의 새로운 부담도 덜고 그 여력으로 청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임금피크제가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장년층 임금삭감을 통해 기업들 좋은 일만 시켜줄 것이라며 반대한다. 지난주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 부회장에 이어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으로부터 임금피크제에 대한 노동계의 입장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청년실업에 양 노총 책임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청년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정부가 임금피크제 확산을 추진하면서 경우에 따라 노조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 변경을 가능케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강행하려던 자세를 일부 누그러뜨려 노동계와 협의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한다. 협의에 응할 의향이 있나.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 되므로 불이익 변경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노동계와 협의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노동계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말인데 노조 동의 없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한국노총이 합의할 수는 없다.”

-경총은 국회에서 정년 60세 의무화 관련법을 만들 때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넣었다는 점을 들어 이번 임금피크제 도입은 법률에 따른 것이라 불이익 변경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총은 한발 더 나아가 “임금피크제의 확산을 위해서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 등 노동법상 노동자 보호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경총이야 당연히 잃을 게 없으니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았을 것 같다. 그만큼 노동자들에게는 독이 되는 내용이란 뜻이다. 국제노총(ITUC)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노동권 보호수준은 5등급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노동자 과보호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정년만 하더라도 실제 정년은 50대 초반에서 점점 내려가고 있는데 여기서 노동자 보호규정을 더 완화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실 박병원 경총 회장은 정부의 임금피크제 확산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임금피크제가 노동시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부의 임금피크제 도입과 일자리 창출의 교환 카드에는 노사 모두 부정적인 셈이다. 다만 정년 60세를 안착시키기 위한 과도기적 수단으로 임금피크제는 받아들일 용의가 있나.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데 비해 법정정년 60세는 오히려 늦게 도입된 감이 있다. 일본은 이미 정년이 65세로 늘어났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60세 이전부터 임금을 깎자는 얘기다. 내가 금융노조위원장 시절 임금피크제에 합의한 적이 있다. 당시는 실제 금융권 퇴직 나이가 훨씬 이른 시기였기 때문에 조합원들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에 정년이 늘어나면 당연히 피크에 도달하는 나이도 늘어나야 하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번 나빠진 근로조건은 회복하기 힘들다. 과도기적이라고 하지만 그대로 정착돼 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다만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 나이와 연동시키고, 임금이 깎이는 비율만큼 노동시간을 줄이는 ‘정년연장 및 노동시간 단축형’ 임금피크제 도입은 고려할만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임금피크제는 노사가 사업장 특성에 맞게 자율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린나이코리아, LG 계열사, KT 등 많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임금피크제를 잘 시행하고 있다. 하던 일도 멍석 펴 주면 그만 둔다고 한다. 정부의 임금피크제 확산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노사 간 다툼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세대 간 일자리 갈등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고, 조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계가 이기주의에 빠져 청년층과 취약계층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총에서도 인정했듯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바로 고용총량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기업들은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이 쌓여 있어도 투자를 안 하는데 임금피크제로 몇 푼의 임금을 깎았다고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은 장년 노동자의 임금만 깎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는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일반노동자에게 강요하면서 왜 정부 자신들은 안 하는지 되묻고 싶다. 결국 정부와 경총이 세대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여러 차례 연구결과에도 나왔지만 청년 일자리와 장년 일자리는 겹치는 부분이 아닌데 장년층이 청년층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른 하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을 때 절약되는 돈으로 청년층 일자리를 더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인데 민간 기업의 경우 처음 몇 해 동안은 그런 시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부는 지금 ‘청년 일자리 위협’ 논리를 급조해서 ‘정규직 노조가 양보해야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과거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 그나마 합리적이었는데 요즘은 완전히 사라졌다.”

-청년고용을 늘리기 위해 한국노총은 어떤 정책대안을 갖고 있나. 이를 위해 노총이 직접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는가.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본다. 금융업 등 서비스 산업의 해외 진출과 개인 창업 활성화도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잘돼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대기업에 편중돼 있고 낙수효과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원청과 하도급 간 불공정 거래관행이 없어져야 하고 대기업에 편중된 자본이득이 중소기업으로 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청·하도급 불공정 거래 개선, 적정 하도급단가 보장, 공공부문 최저 낙찰제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직접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 임금·단체협약 지침을 내려 보낼 때 상생협약 등을 모범사례로 제시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이외에도 청년고용할당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가이드라인이 강행될 경우 한국노총 산하 조직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또한 노조가 없는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임금피크제가 얼마나 확산될 것으로 보는가.

“한국노총 산하조직 중에서 공공부문은 당연히 타격을 받을 것이다. 공공부문을 제외하면 한국노총 조직의 80% 정도가 중소 영세사업장이다. 이런 사업장들은 임금피크제에 맞는 직무개발도 안 돼 있다. 하는 일이 특별히 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임금을 삭감한다는 데 대한 반대가 심하다. 확산 속도를 가늠하긴 힘들지만 현장 정서상 노동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또한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임금피크제 악용의 빌미가 될 소지가 크다. 정부는 지금 다음 정부에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계속 높아지는 때에 60세 정년도 미흡하다고 느끼는 노동자들이 많다. 법정 60세 정년을 차츰 더 높여서 65세까지 연장하고, 그 대신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겠나.

“노총이 주장하는 바다. 노인빈곤율이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라고 한다.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연동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60세 정년을 보장하고 그 이후의 계속 고용에 대해선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4월에 결렬된 사회적 대화 과정에서 공공부문 노임 최저가 입찰제 폐지 등 세부적이지만 의미 있는 합의가 더러 있었다. 대화는 주로 무엇 때문에 결렬됐다고 보는가.

“한국노총이 마지막에 5대 불가사항을 내걸었다. 다른 것들은 꼭 그 자리가 아니었더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등 핵심사안에 대해선 현상은 같지만 그 현상을 일으킨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서 확연한 입장 차이가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경영계가 주로 요구하는 고용 유연성이 아닌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 유연성을 확보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조 상급단체도 고용형태별,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 확대 추세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임금유연성 문제는 개별 산업의 특성과 현황에 따라 노사 간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될 사항이다. 지금은 정부가 임금체계 변경 등 기존 조직노동자들의 임금저하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하이닉스 사례와 같이 노사 간 자율적 상생협력을 지원해야지 강제로 유도해서는 안 된다. 성과급의 경우 많은 기업에서 정착됐지만, 공정성 시비와 평가등급을 대상자별로 돌려가며 주는 방식 등으로 평가결과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노동계의 과제인 연대임금 정책은 초기업단위 노조가 활성화되고, 좀비기업을 망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직무급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높아지고 노동자 전체의 임금 수준이 상당 폭 올라서 기본생활이 해결돼야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 협상 시한이 지났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최저임금의 실질적 인상은 세계적인 추세다. 독일에서는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후 소비가 대폭 늘었다. 최경환 부총리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다고 큰소리 쳤으니 자신이 한 말에 책임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일부 노동계 요구처럼 당장 1만원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5년에 걸쳐 1만원으로 인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려면 연 12%씩은 인상해야 한다. 최저임금제도 실효성을 높이려면 위반 사업자에 대한 감시 감독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자금여력이 없는 중소영세사업장에 대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형마트와 동네 슈퍼마켓 간의 상생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모두 풀 수는 없다. 대기업과 중소영세사업장이 상생하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어야 비로소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만난 사람=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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