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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복실]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매년 워킹맘 31만명이 직장 떠나는 현실… 직장과 가정이 좀 더 조화 이뤘으면

[청사초롱-이복실]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기사의 사진
어느 날 갑자기 후배가 지방 발령이 났다. 아이들은 고3, 초3이었다. 그녀가 다니는 회사는 전국에 지사가 있는 큰 회사다. 직원 누구나 주기적으로 지방순환 근무를 해야 한다. 여자라고, 고3 수험생을 둔 엄마라고 예외는 없다.

엄마의 지방 발령을 듣는 순간, 어린 딸의 첫 마디는 “엄마, 이제 내 머리는 누가 묶어줘?”였다. “가지 마!”보다 더 절실하다. 일찍 철 든 고3 딸은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수험공부를 했다. ‘나’라도 엄마 속 안 썩여야지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더니 대학에 무난히 합격하였다. 그렇게 지방 근무를 한 지 벌써 2년이나 되어 간다. 최근에 만난 그녀는 지쳐 있었다. 이번 인사에도 서울로 복귀가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만두어야 하나? 계속 다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근무하는 C사무관은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직원들 간에 인기가 좋았다. 인사발령 시기만 되면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았다. 결혼 후 아이 셋을 낳고는 육아휴직을 6년이나 했다. 직장에 복귀하니 후배들은 승진해서 올라가 있었고, 자신의 업무능력도 전과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직장에 고마워한다. 좋은 제도가 있어도 이용조차 하기 어려운 사각지대 워킹맘들이 도처에 많기 때문이다. 직장을 우선시한 후배나 가정을 먼저 돌본 C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필자는 30년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금년 초 워킹맘의 애환과 여성정책 이야기를 담은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펴냈다. 책을 읽은 지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어머나, 애들 키우면서 직장생활하느라 그렇게 고생하셨는지 몰랐어요”이다. 어느 지위에 있든지 워킹맘의 어려움은 똑 같은데, 내색을 안 하면 다들 모른다. 여성들도 직장인으로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아이들에게 달려가고 싶은 애틋한 마음도 있다. 여자의 자리와 엄마의 자리를 다 갖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나는 지금 대학에서 여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 2학년 때는 생기발랄하던 그녀들은 3학년이 되면 얼굴에 그림자가 진다. 취업 걱정 때문이다. 우리 때와 달리 거의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취업을 원한다. 수업시간에 물어보았다. “나중에 결혼해도 직장을 계속 다니고 싶어요?” 거의 99%의 대답은 “네”이다. 1%의 “아니요”의 이유는 주변의 워킹맘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다.

최근에 만난 중소기업 CEO인 H사장은 양성평등에 대해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이념적으로 양성평등을 논할 필요가 없어요.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은 요원합니다.” 아직도 매년 31만명의 워킹맘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직장을 떠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엄마, 오늘 회사 안 가면 안 돼?” 울면서 매달리던 철없던 필자의 두 딸들도 어느새 커서 전문직을 꿈꾸는 젊은 여성으로 성장했다.

딸들에게 필자는 큰소리 뻥뻥 친다. 언제 결혼할지 모르니 큰소리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해서 아이만 낳아라. 무조건 엄마가 키워줄게.”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지난 1일부터 7일까지는 제1회 양성평등주간이었다. 작년까지는 여성주간이었으나 이제 양성평등주간으로 변경되었다. 1995년에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었으니 거의 20년 만의 변화다.

이러한 변화와 상관없이 현실에서는 여전히 직장과 가정의 조화는 줄타기 곡예처럼 쉽지 않다. 워킹맘들의 외로운 줄타기가 끝나고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를 다 갖는 날은 언제나 올까? 첫 양성평등주간을 맞으며 내년에는 금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이복실(숙명여대 초빙교수·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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