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참게’ 정당의 잠룡들 기사의 사진
섬진강에는 매년 봄 참게가 올라온다. 하동, 광양, 구례, 곡성의 섬진강가에는 알이 꽉 찬 참게를 매운탕으로 끓여내는 음식점들이 많다. 어느 해 봄 압록역 인근 음식점 주인이 그날 잡아 온 참게를 뚜껑 없는 물동이에 그냥 넣어두는 것을 봤다. 참게는 혼자서라면 수직의 댐도 그냥 타고 넘어가는 암벽등반 선수다. 그러나 음식점 주인은 “물동이 속 참게는 단 한 마리도 도망가지 못한다”고 장담했다. “한 놈이 탈출하려 하면 그 밑에 놈들이 다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전 구례나 하동의 장터에서 참게들이 높이 30㎝밖에 안 되는 물동이도 탈출하지 못하는 광경을 본 기억이 난다. 하긴 옛 속담에 “구럭의 게도 놓아 주겠다”는 말은 결코 도망치지 못할 게도 잃어버릴 정도로 어리석다는 뜻이다. 현지 농민들은 요즘 섬진강 지천의 물이 농약 사용 감소 등으로 옛날보다 깨끗해졌지만 참게를 보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수중보가 많아지면서 보나 어도에 몰린 참게들이 서로 전진을 방해하는 탓이 크다.

물동이나 수족관 속 참게를 보면서 우리나라 정당과 정치인들이 연상됐다. 얼른 수족관을 탈출해서 계곡의 잠룡이 돼야 하는데 다른 참게들이 다리를 잡는다. 누가 원내대표와 같은 중책을 맡아 협상 능력을 발휘해 상대 당과 타협을 이뤄 내거나 뛰어난 대중 소통 능력을 드러내면 당장 사방으로부터 견제구에 시달리는 것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처한 상황도 앞장세워 놓고 뒤에서 흔드는 ‘참게 정당’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본다. 물론 위헌 논란, 박근혜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 등 다른 차원도 있지만, 공천권 다툼이 ‘앞서가면 다친다’는 공식을 고착화하는 것은 참게들과 비슷하다. 결정적으로 공통점은 동료 의원들이 주동자와 함께 돌팔매질을 하거나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초·재선 의원들이 모두 침묵하는 것도 그렇지만, 비슷한 위치에서 ‘동병상련’을 느낌직한 리더 그룹, 즉 김문수 남경필 안상수 홍준표 등 전·현직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유 원내대표에 대해 사퇴든 지지든 한마디 말이 없다. 사실 유 원내대표와 방관하는 이들도 한때 모난 돌이 정 맞는 격으로 동료를 당권에서 밀어내거나, 스스로 밀려나기도 했다. 일부는 떠밀려서 지자체장 후보로 출마해야 했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의 획득이다. 국민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을 대선 후보를 내기 위해 치열한 당내 경쟁과 협력을 거친다. 미국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 출마하기 훨씬 전인 85년 결성된 민주당지도력위원회(DLC)에서 차차기 대선의 리더로 추대됐다. 당시 DLC의 젊은 정치인 가운데 도덕성에서, 지적 능력에서 클린턴보다 더 훌륭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완벽한 리더는 없다. 당시 시대 상황과 국가적 의제 해결에 상대적으로 더 적합한 능력을 갖췄다고 합의가 이뤄진 후보를 위해 모두 일찌감치 양보하고 대선용 정책강령을 만드는 데 협력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역시 당에 의해 오랜 기간 준비되고 만들어진 대통령 후보였다.

우리나라 정당 안에 경쟁은 있을지 몰라도 협력은 찾기 어렵다. 그 결과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도 여당이나 제1야당이 후보를 확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 직전 눈앞의 이득을 위한 계파 간 이합집산은 있지만, 대의를 우선시하는 통 큰 양보는 없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치적 자질이나 사람됨을 자세히 알 시간이나 충분한 기회도 없이 투표장으로 향하게 된다. 계속 이대로라면 우리 국민들은 후보다운, 검증된 후보가 없는 대선을 치러야 하고, 승천이나 탈출의 기회를 놓친 참게들은 매운탕 가마솥으로 향할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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