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정막개] 평생 필명으로만 살다간 작가, 사후 20년 만에… 최명근 작가 첫 자기이름 소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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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근(사진)의 장편 역사소설 ‘정막개’는 어쩌면 세상에 영영 나오지 못했을 작품이었다. 1982년 작성된, 30년도 더 묵은 원고가 기파랑 출판사의 조양욱 편집주간 손에 들어와 출판에 이르게 됐다. 작가가 고인이 된 지도 20년이나 지났다.

최명근은 이 책으로 처음 작가로 알려지게 됐다. 그는 여러 차례 소설 공모전에서 당선됐으나 한 번도 작가였던 적이 없었으며 자기 책을 낸 적도 없었다. 상금을 타기 위해 소설을 썼으며, 가명으로만 작품을 발표했다. 우리 소설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최명근은 1955년 ‘현대문학’에 ‘후천화일점(後天話一點)’이란 제목의 단편을 투고해 김동리 추천을 받았다. 당시 부산대 사학과 1학년이었고 ‘최희성’이란 가명을 필명으로 사용했다. 이어서 ‘최정협’이란 이름으로 66년 한국일보 주최 추리소설 공모에서 당선된다. 이 때 당선작인 ‘흙바람’은 67년 이만희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다. 86년에는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자살로 설정한 중편소설 ‘자결고(自決考)’로 삼성문화재단 소설 공모에서 당선된다. ‘최명진’이란 필명을 사용했다.

36년생인 최명근은 일찍 부모를 여읜 10남매의 장남이었다고 한다. 그는 검정고시를 봤고 평생 미혼인 채로 직장 생활을 했다. 필명은 모두 동생들 이름이었다. 여동생 최예욱씨는 “가난에 보탬이 될까 하고 많은 고료를 내건 공모에 투고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가명을 사용하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한다.

‘정막개’는 82년 경향신문이 2000만원 고료를 내걸었던 장편소설 공모 투고작이다. 필명은 ‘최민조’였고 당선작이 된 손영목의 ‘풍화(風化)’와 함께 최종심에 올랐다.

정막개는 조선시대 실존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박영문·신윤무가 죄를 당한 것은 정부에 딸린 종 정막개가 고변한 때문이었다”로 시작되는 짤막한 기록이 나온다.

소설은 관노(官奴)로 목마장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하던 정막개와 친구들이 말을 훔쳐 파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이 탄로가 나면서 이들은 쫓기는 신세가 되고 이야기는 최하층 노비들의 생활상, 젊은 노비의 야심과 드라마틱한 출세, 그리고 예정된 파멸로 전개된다.

무엇보다 당시 심사평에서 박완서가 “천격스러운 인간의 전형”이라고 평한 정막개라는 인물의 캐릭터가 강렬하다. 정막개는 출세를 위해 평소 자신에게 잘 대해주던 대감을 역모로 고발하고, 그 공로로 정3품에 오른다.

최명근은 당시 투고문에서 “역사의 변천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오랜 인물 유형 속에 ‘남을 밟고 일어서서, 남을 밟고 살아가는’ 인간 유형이 유구하게 잔존되고 있음을 보고, 사람에 대한 절망감에 싸이는 때가 많다”며 “이런 부정적인 인물의 전형을 조선 때의 실제 인물 관노 정막개에게서 보고 그 인물을 소설로 형상화해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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