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상근] 낙타를 위한 변명 기사의 사진
메르스 바이러스의 광풍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지나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뚫린 것도, 국가가 뚫린 것도 아니었다. 뚫린 것은 국민의 마음이었다. 어린애들은 물에 빠져 죽고, 병약한 노인들은 돌림병에 걸려 죽으니, 이제 우리 국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고, 누구 하나 믿을 사람 없기에 각자 알아서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시민의식도 덩달아 종적을 감추었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공무원이 출근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유람을 감행하고, 격리가 답답해서 골프를 치러 갔다는 변명 앞에 우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 와중에 오욕을 뒤집어쓴 동물이 있었으니 메르스 바이러스의 숙주로 지목된 낙타이다.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로 메르스 바이러스의 존재가 알려진 이래 낙타는 역병의 매개동물로 지목되어 왔다. 덕분에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호주에서 태어나 수입되었다는 쌍봉낙타까지 동물원에서 감금되는 수모를 겪었다.

메르스로 오욕을 뒤집어 쓴 낙타

하지만 낙타는 멋진 동물이다. 황지우 시인의 ‘나는 너다’란 시에서 낙타는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내딛는 멋진 동물로 묘사된다. 시인은 사막의 모랫길을 걸어가고 있는 낙타를 ‘길은 가면 뒤에 있다’란 표현으로 이 인내심 많은 동물을 상찬했다. 모래사막을 내딛는 낙타의 힘찬 발걸음에서 우리는 모험적인 인생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바람에 떠밀려 새 날’이 떠오를 때까지 밤 새워 사막의 모랫길을 걸어갔던 낙타에게 시인은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지평선을 보아라’고 노래한다. 실제로 낙타는 눈꺼풀이 3개여서 모래 폭풍 속에도 동트는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이집트의 고도(古都) 아스완에서 콥트 기독교 수도원 유적지가 있는 사하라 사막으로 낙타를 타고 가본 경험이 있다. 낙타는 경이로운 인내력으로 사막의 모랫길을 천천히 걸어 우리 모두를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있는 콥트 수도원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때 낙타를 몰던 베두인들이 들려준 이야기다. 사막에서 길을 잃어 마실 물이 다 떨어지면, 베두인들은 최후의 생존수단으로 낙타 코끝에 작은 상처를 내고 흘러나오는 낙타 피를 마신다는 것이다. 사막의 베두인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낙타와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다.

뚫린 것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

흥미로운 것은 낙타가 전염병의 매개 동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구약성경이 이미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킬 때 이를 반대하던 파라오에게 “만약 당신이 우릴 가도록 해주지 않으면, 낙타와 가축에게 심한 돌림병이 돌 것”이라고 경고한다(출애굽기 9장 3절). 낙타를 통한 메르스 전염병의 창궐이 구약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모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았고, 낙타를 포함한 모든 가축들은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에 낙타가 당했던 시련은 대한민국에서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미 모세 시대의 이집트에서도 낙타는 정치가들의 잘못된 판단과 우유부단한 결정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낙타는 말이 없다. 대신 구약시대에 들려왔던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출애굽기 6장 5절)였고, 메르스 바이러스의 광풍이 휘몰고 간 이 땅의 거리에서는 각자도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병원이 뚫린 것도, 나라가 뚫린 것도 아니다. 뚫린 것은 국민의 마음이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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