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준구] 원칙주의자가 좋긴 한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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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금융’이 유행이던 시기가 있었다. 금융은 ‘수학’이다. 대출 서류들을 검토해 자격이 되면 돈을 내주고, 안 되면 내주지 않는다. 같은 수식을 거친 답은 같아야 한다. 모든 금융회사는 각각의 자격 요건을 수치화한 전산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하나라도 기준에 미달되면 프로그램에 입력조차 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이 원칙을 깨려면 승인 권한을 가진 ‘높으신 분’에게 부탁을 하거나, 억지로 다른 금융상품에 가입해야 한다(일명 ‘꺾기’). 이 단계가 워낙 뻑뻑해 은행의 높은 ‘문턱’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뜻하다’는 ‘덥지 않을 정도로 온도가 알맞게 높다’는 뜻인데, ‘정도’ ‘알맞게’ 같은 수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구성된다. ‘따뜻한 수식’이란 어떤 거지? 궁금했는데 마침 이를 내세운 회사 임원과 식사를 할 자리가 생겼다.

답은 그리 어렵진 않았다. 전산에 입력하는 자격요건의 범위를 조금 완화하는 거다. 거칠게 요약하면 예전엔 10점을 채워야 했는데 지금은 9점만 돼도 대출을 해준다. 원칙을 조금 양보한 거였다.

따뜻한 금융은 절벽 끝에 선 기업·자영업자·개인에게 관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스듬한 절벽은 없다. 이들에게 금융회사의 ‘완화된’ 기준에 맞는 담보가 있을 리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관용은 이들의 기본기, 열정, 미래 성장성 등을 판단하는 데서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담당 직원에게 주어지는 재량이다. 우리 직원의 슬기를 믿고, 다소의 손실은 면책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직원은 절벽에 선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전산에 입력하는 기준을 다소 넓힌 것을 가지고 ‘따뜻한’을 붙이기엔 좀 민망하단 생각을 했다. 나쁘게 말하면 제2금융권의 우수 고객을 제1금융권으로 빼앗아 오겠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까다로운 원칙의 세상에서 발휘되는 ‘따뜻함’이란 이런 정도가 한계다.

‘통섭(統攝)형 인재’ 바람이 불었던 때도 있었다. 6년 전 한 대기업 회장이 처음 언급한 뒤 채용 시장에 유행이 됐다. 기업들은 문·이 통합형 인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경영직은 물론 기술·영업·연구직 등 직군 불문 채용 기준을 적용했다. 대학들은 통합형 커리큘럼을 쏟아냈다. 취업준비생들은 ‘어떤 교양서적을 읽었네’ ‘몇 권을 읽어야 취업 안정권이네’ 등의 정보에 귀를 쫑긋했다.

이 리더의 채용 원칙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6년 만에 평가하긴 쉽지 않다. 다만 기형도를 안다고 성과가 좋고 쇼팽을 즐긴다고 실적이 높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적재적소에 스페셜리스트를 찾아 쓰는 것도 인사의 기술이다. 우후죽순 따라왔던 기업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한때의 열풍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이 회장은 오너가 아닌 전문 경영자였고, 그가 밝혔던 인사 원칙 중 지금은 사라진 것들이 많다. 낙하산 최고경영자(CEO)가 애먼 인사 원칙을 밝힌 뒤 임기가 끝나자 이를 비밀리에 폐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대기업도 있었다. 리더의 원칙이란 이런 것이다. 조직의 미래를 심사숙고하고 무게감을 감당해야 한다. 한번 세우면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의 원칙이 사회적으로 발전하면 계약이 되고, 나아가 법이 된다.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원칙주의는 쓸데없는 갈등을 줄이고 일의 효율을 높인다. 이렇게 원칙을 지키는 것만으로 원만하게 굴러가는 사회는 컴퓨터 회로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컴퓨터에 사용되는 칩과 달리 하라는 것만 하지는 않는다. 컴퓨터 내부에 중앙처리장치(CPU)와 신념이 다른 그래픽카드가 있을 턱이 없다. 사용자가 ‘포토샵’을 실행했는데 ‘지뢰 찾기’ 게임이 켜지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에 불과하다.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을 해결하는 데에는 상식과 도덕, 그리고 리더의 능력 등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상식과 도덕은 법이나 계약의 보험 역할을 한다. 올바른 사람은 법이나 계약이 없어도 올바르다. 리더의 능력으로는 합리성이 먼저 꼽힌다. 사안의 합당함을 따지는 ‘합리성’은 짜임새나 법칙을 따지는 ‘논리성’보다 넓은 개념이다. 잘 만들어진 논리들이 충돌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을 때 토론을 한다고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한쪽에 양해를 구하거나, 결단을 내릴 때 필요한 게 리더의 합리성이다.

특히 사안의 본질을 모르는 리더가 합리적일 순 없다. 대립하는 양쪽은 대체로 각각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서로의 상식과 상식이 부딪힐 때 비로소 필요한 것이 본질을 헤아리는 리더의 통찰력이다. 원칙주의의 함정은 그 지점에 있다.

강준구 정치부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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