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절대 충성은 위험하다 기사의 사진
누가 됐든 세상을 버리며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은 결코 가볍게 대할 수 없다. 비록 그가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생명을 던지며 선택한 말에는 주목해야 할 상당한 진실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지난 18일 국가정보원 직원 임모씨는 “내국인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자료를 삭제했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 내용은 완전한 사실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사실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볼 점은 있는 것 같다. 그의 유서에는 세상을 버리는 자의 자기고뇌와 삶에 대한 흔들림 같은 어휘가 들어 있지 않다. 그 대신 국정원 조직과 업무 전체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끝에 덧붙인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특히 눈에 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확신과 감사로 가득한 심리상태로는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유서는 진실성이 부족한 것일까. 일부에서 말하듯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유서인가.

그건 아닌 듯하다. 앞에서도 말했듯 유서라는 마지막 양식의 진실성을 우리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냉정하고 예의를 갖춘 유서는 그렇기 때문에 뼛속까지 진실되어 보인다. 즉 국정원은 직원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조직에 대한 충성 하나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는 점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등장한다. 바로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다. 발전과 완성을 지향해나가는 인간들은 누구나 변전을 거듭하고, 신뢰와 배신, 충성과 불충 사이를 오간다.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이 모두 그렇다. 괴테가 구원의 여성으로 설정한 그레첸마저도 사랑을 위해서는 친모의 생명까지 무시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인간을 영원히 파멸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메피스토펠레스는 단 한 번도 배신하지 않고 파우스트 박사가 요구하는 대로 무엇이든 충성을 다한다. 절대적인 충성은 악마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류의 역사가 낳은 지성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괴테가 60년에 걸쳐 완성시킨 ‘파우스트’는 오늘의 한국정치와 갈등 국면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것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타인에게서 완전한 형태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난센스요, 인간성을 무시하는 독재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완전한 형태의 신뢰와 충성을 지향해갈 수 있을 뿐 그것을 실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 직원의 유서는 무섭도록 차가운 진실을 담보한 것으로 읽히며, 곧바로 국정원 직원 전체의 이름으로 성명서가 나온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는 계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원 개혁이 얼마나 시급하면서도 요원한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예증이라고 덧붙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요된 충성은 부작용을 부른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공개 파문(破門)한 것도 그렇다. 의원총회에서 선출한 원내대표를 내치는 과정에서 거의 아무런 소통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심판을 요구한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승리했을지 몰라도 산적한 문제가 한 달 가까이 팽개쳐진 것을 보는 국민들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당 친박계 의원들의 노골적인 줄서기와 유 전 원내대표를 향한 왕따작전, 국회의장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 대통령의 싸늘한 시선은 오늘의 산적한 한국정치의 문제가 상당 부분 협량(狹量)에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지금이 과거의 중앙정보부 시절과 같이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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