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 ‘커뮤니티 맵’에 물어봐! 기사의 사진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 커뮤니티 매핑에 참가한 장애인들이 지난해 7월 부산 초량동에서 각 업소의 문턱, 경사로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모바일과 인터넷의 온라인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아래 지도).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제공
처가 식구들과 모처럼 외식을 하기 위해 2시간 동안 ‘사전조사’를 했다. 인터넷에서 거리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포털 사이트 로드뷰를 통해 ‘입구에 턱이 없는 식당’을 고른 뒤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지, 좌식 아닌 테이블 자리가 있는지 확인 전화를 했다.

그러나 힘들게 고른 식당에 도착하자 육중한 전동 휠체어를 맞닥뜨린 주인이 난색을 표했다. “일반 휠체어인 줄 알고 계단에서 들어드리려 했는데 힘들겠네요.” 근처를 1시간가량 헤맨 끝에 겨우 식사를 했다. 22일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정영만 회장은 그날 저녁의 비참한 장면을 회상하며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공동체 문제 ‘커뮤니티 매핑’으로 푼다=한국근육장애인협회와 커뮤니티매핑센터는 지난해 5월부터 ‘알아?!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http://www.mapplerk.com/kmda)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부산 대전 대구 인천 광주 등 전국 6개 광역시에서 휠체어·유모차·노약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문턱을 없앤 편의시설 정보를 온라인 지도에 실시간 표기하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음식점 화장실 미용실 숙박시설 문화시설 공공기관 등 전국 1457곳의 정보가 입력됐다. 자원봉사자와 장애인 등 참여 인원은 어림잡아 800여명. 언젠가 ‘휠체어 세계지도’를 만드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지난달 초에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에 참가해 프로젝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해 번화가에서 60∼80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커뮤니티 매핑 활동을 진행하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커뮤니티 매핑(community mapping)’은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특정 주제의 지도 제작에 참여해 소통하고 지역 계획에 일조하는 전 과정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사단법인 커뮤니티매핑센터가 설립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생물다양성, 노인복지, 문화예술 등 그동안 센터가 직간접적으로 제작을 도운 지도만 200건이 넘는다.

커뮤니티 맵은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작용한다. 임완수 커뮤니티매핑센터장이 2006년 만든 ‘뉴욕 화장실 지도(NY restroom)’가 대표적이다. 뉴욕에서 화장실을 제때 찾지 못해 불편했던 그는 웹 사이트를 열어 누구나 뉴욕의 개방 화장실을 표시할 수 있는 지도를 마련했다. 서울 서초구는 2013년부터 관내 청소년들이 학교 근처의 주류 제공 노래방, 상습 흡연구역, 교통사고 위험지역 등을 모니터링해 ‘청소년 유해환경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교육 당국과 학부모들은 학생들 눈에 담긴 유해환경을 지도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커뮤니티 맵의 진가는 대형 재난 상황에서 드러난다. 정부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발생·경유 병원 정보를 공개하지 않자 지난달 4일 시민들은 ‘메르스 맵’을 만들었다. 감염자가 거친 전국 병원 정보를 이메일로 제보받아 제작했다. 거짓이라는 신고가 5회 이상 들어오는 항목은 삭제했다. 정부가 메르스 병원을 공개키로 결정해 단 7일 만에 문을 닫았지만 340여건의 제보가 모였고 방문자는 500만명에 달했다. 2011년에는 정부가 전국 4000여곳의 구제역 가축 매몰지를 공개하지 않자 네티즌들이 직접 매몰지 200여곳의 정보를 수집해 구글 지도에 기록하기도 했다.

◇가치와 기술의 만남…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도약해야=커뮤니티 맵은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기술을 만나 탄생한 혁신이다. 이병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생산물보다 아이디어가, 경쟁보다 공유·협력이 더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면서 공유경제·마을공동체 등과 함께 커뮤니티 매핑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바일 기반 SNS가 확산되고 GPS 기능이 일반화되면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해 지도에 표현하기는 한층 쉬워졌다.

전문가들은 커뮤니티 맵이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자리 잡으려면 ‘매핑’보다 ‘커뮤니티’를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 센터장은 “커뮤니티 맵을 ‘집단지성의 지도’로만 국한시키면 안 된다”며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구성원들이 커뮤니티 매핑을 통해 스스로 공동체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역량을 개발하도록 돕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도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실생활에 접목하려면 지역활동가, 사회적기업, NGO 등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유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실정에 맞는 관련 인프라가 부족해 지금은 관(官) 주도 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시민들이 스스로 나설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기관이 더 많은 공공 데이터를 대중에 개방해 민간 주도의 커뮤니티 매핑이 실생활에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수민 고승혁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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