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위철환] 사법시험, 그 희망의 문은 열려 있어야 기사의 사진
개나리는 보통 봄에 핀다. 제철이 된 개나리꽃들이 온통 무성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병아리떼처럼 노랗게 무리 진 개나리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늦가을이나 겨울에도 양지 바른 곳에서 개나리가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봄에 핀 개나리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물량 공세를 벌이는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은은한 정취로 자연과 조화를 이뤄내는 내공을 보인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가 있는가 하면 진흙 속에서 청초하게 핀 연꽃처럼 황무지나 쓰레기장, 심지어 시궁창에서조차 단아하게 피는 꽃들도 있다. 대지는 봄에 핀 꽃이나 늦게 핀 꽃, 들꽃이나 산꽃이나 가리지 않고 말없이 모두를 포용하여 끌어안고 있다.

인간에게도 봄에 핀 꽃들이 있고, 뒤늦은 계절에야 방울을 터뜨린 꽃들이 있다. 주변을 보면 변변치 못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있고, 학생운동을 하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던 중 쉰이 훨씬 넘어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한 사람도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여성 법조인은 여중생 시절에 갑자기 아버지를 여의자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여상에 진학하여 취업을 했고, 주경야독 끝에 독학하여 학사고시를 통해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이후 천신만고 끝에 사법시험에 도전, 늦은 나이에 합격의 감격을 맛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상고를 졸업한 뒤 독학으로 시법시험에 합격했고, 판사와 변호사를 거쳐 결국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했던 것은 국민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최고령 합격자, 운동권 전력 있는 사람, 가정형편이 어려운 여상 출신 직장인, 대학 졸업 자격증도 없는 상고 출신 학생 등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사회 제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법시험이었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땀 흘린 만큼 그 대가에 대한 평가는 공정한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확고한 믿음, 그것이 바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공정한 방법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계층이동을 할 수 있는 사다리가 바로 사법시험이다.

2017년이면 사법시험은 사라질 운명이다. 사법시험 폐지 후에도 쉰이 넘은 직장인, 운동권 전력의 수험생, 스펙이 없는 학사고시 출신자 최종학력 상고 졸업생에게 법조인의 관문이 열려 있을까. 심히 걱정이 앞선다. 사법시험이 없는 상태에서 이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계속 듣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시대가 그나마 사회 조직을 수백년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제도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도 중국의 과거제도를 극찬하면서 “엄격한 과거제도를 거쳐 구성원을 선발하는 정부보다 더 나은 정부를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과거제도가 기회 보장과 공정 절차 이념을 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강성한 것도 이런 철학을 실현할 사회적 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스쿨 제도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사법시험을 병존시킬 필요성이 있다. 우리 사회에 적합한 제도가 무엇인지 일정 기간 경쟁시켜보고 나중에 제도 정비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책일 수 있다. 적어도 사회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

늦게 피어나는 꽃이나 두메산골 척박한 땅에서 핀 야생화나, 시궁창에서 자라 피운 꽃이나 모두 소중하게 만개할 수 있도록 하늘이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연이 이루어진다.

위철환 전 대한변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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