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민주화 이뤘지만…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 기사의 사진
한국 정치는 지난 70년간 이념 대립과 권위주의 시대를 딛고 민주주의를 싹틔우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지나왔다. 하지만 첨예한 진영 대결 구도와 고질적인 지역패권주의를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뿌리내리기까지 갈 길은 멀다.

◇정치적 암흑기를 지나=광복 직후의 정치 상황은 혼란과 분열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한반도에는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했고 이념 갈등 속에서 ‘남북한 총선거’는 실시되지 못했다. 각각 단독 정부를 수립한 남북한은 6·25전쟁과 남북분단 고착화란 비극을 겪었다. 이승만정권은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영구 집권을 시도했다. 또 1960년 3·15부정선거로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들끓던 민심은 4·19혁명으로 분출됐다.

1960년 8월 내각제 개헌을 토대로 출범한 제2공화국은 이듬해 5·16 군사 쿠데타로 무너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취임 이후 고속성장을 이뤘지만 헌정을 파괴하고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다. 유신체제는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박 전 대통령이 숨지면서 막을 내린다.

◇척박한 땅에서 싹틔운 민주주의=‘서울의 봄’으로 명명된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다시 좌절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끈 신군부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전두환정권 역시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며 장기 집권을 꾀하다 국민적 저항에 무릎을 꿇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민주화를 부르짖는 시위는 격렬하게 번져나가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민주정의당(민정당·새누리당 전신) 노태우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6·29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민주화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정권교체가 뒤따르진 못했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야권 분열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1990년 1월 노 전 대통령과 통일민주당(민주당) 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했다.

◇‘문민정부’ 출범…민주적 정권교체 시대로=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군부독재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하나회 척결과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금융실명제 도입 등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그러나 집권 말 외환위기로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됐다.

헌정 사상 첫 민주적 정권교체는 1997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현실화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DJP연합’ 등을 통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의 공(功)은 분단 이후 처음 남북 정상회담 성사 등 남북 관계에 훈풍을 불어넣은 점이다. 다만 훗날 ‘대북 퍼주기 논란’도 뒤따랐다.

노무현정부는 2003년 2월 출범했다. 권위주의 청산과 지역 균형발전 등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중립 의무 위반과 측근비리 등을 이유로 제출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수모를 겪었다.

◇끊이지 않는 진영 갈등=이명박정부는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 향배를 돌렸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을 기점으로 보·혁 갈등이 폭발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집권 2년차인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투신, 서거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며 남북 관계도 얼어붙었다.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연 박근혜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에 이어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난항을 거듭했다. 이후에도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 ‘성완종 리스트’ 파문, 국회법 개정안 논란 등으로 국정 동력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9일 “한국 정치는 어려운 여건 속에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측면에서 다른 어느 국가에서도 찾기 어려운 정치 발전을 이뤄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 등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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