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산으로 간 야당 기사의 사진
“시원한 정치로 거듭나겠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서울 여의도 윤중로 국회로 통하는 입구에 내건 현수막 문구다. 차량 통행량에 비해 행인들의 왕래가 뜸한 윤중로에 새정치연합을 상징하는 푸른 현수막이 나부끼는 걸 보니 전국 주요 도로 주변에 똑같은 현수막이 내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선거만 했다 하면 참패하는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죽 ‘시원한 정치’를 못 보여줬으면 이런 현수막을 내걸었을까 하는 측은지심이 앞선다.

야당은 소수일 때가 많다. 소수의 야당이 다수인 여당과 대결을 벌이면 결과는 뻔하다. 소수 야당은 여당이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할 수는 있어도, 결코 여당이 하기 싫은 걸 하게 할 순 없다. 그런 야당이 여당의 능력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을 때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 등 헌정사에 사례가 드물지 않다.

어느 정권이든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면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현상유지를 택하기 마련이다. 특히 보수 정당이 집권했을 때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에 맞서 야당은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게 보통의 정치 흐름이다. 변화와 개혁은 현상을 타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임기 말로 갈수록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가 적잖은 국민들이 어제와 다를 게 없는 오늘에 피로감을 느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박근혜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앞둔 요즘 개혁을 이슈화하면 상당한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변화와 개혁은 진보의 아이콘이 아니던가. 새정치연합이 옥상옥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부인사들로 혁신위원회를 구성한 목적도 혁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 아닌가.

하지만 흐름은 정반대다. 오히려 보수 여당이 개혁을 이슈화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이 설정한 의제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공무원연금개혁이 그랬고, 정부·여당이 올 하반기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노동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야당이 내부 노선투쟁에 허송한 사이 개혁은 보수 여당의 아이콘이 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표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며 ‘개혁 마케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여당발 개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국의 흐름은 새누리당 의도대로 가고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이슈 메이킹에 실패했다.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국가정보원 민간인 감청 의혹 사건은 이를 뒷받침할 결정적 한방을 찾지 못해 이슈화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여당발 개혁을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당내에서조차 “대안 없이 노동개혁에 대응하면 우리가 개혁을 막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설상가상 혁신의 아이콘이 돼야 할 혁신위는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기는커녕 새정치연합의 반개혁적 이미지만 더욱 각인시키는 매당(賣黨)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300명인 현 국회의원 수도 많다고 여기는 마당에 정원을 369명으로 확대하자는 혁신위 주장이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더욱이 비례대표 당선권의 3분의 1을 현장활동가에게 배정하라는 요구는 혁신위원들의 활동공간인 시민단체 밥그릇을 챙기려는 의도로밖에 달리 해석이 안 된다.

혁신위의 출범에도 새정치연합 지지율(한국갤럽 조사 기준)은 반등하지 못하고 20% 초반에 고정돼 있다. 바다로 가야 할 새정치연합이라는 배가 산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과 동떨어진 혁신위부터 혁신해야 ‘시원한 정치’가 가능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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