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명품마을을 가다] (17) 충북 청주시 벌랏 한지마을 기사의 사진
샘봉산에서 내려다 본 청주 벌랏 한지마을의 전경. 파란색 지붕들이 있는 마을 너머로 대청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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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문의면에서 차를 타고 대청호를 따라 구불구불한 시골 길로 30분을 달려 가다보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나타난다. 논이 없고 밭만 있다는 뜻을 가진 소전리 벌랏 한지마을이다. 수몰 전 금강의 벌랏나루가 있어 지금의 벌랏마을로 불린다. 마을버스가 하루 여섯 번 오가고 그 흔한 슈퍼마켓 하나 없는 동네다. 수자원 보전지역으로 신축된 건물이나 개발이 없이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고 소박한 이 마을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알려진 뒤 ‘충북의 동막골’로 불리고 있다.

벌랏마을은 1980년 대청호가 만들어지면서 차 한대 다닐 수 있는 외길이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나룻배로 강을 건너 대전 쪽으로 나가야 했던 육지 속의 섬이었다. 임진왜란 때 피난 온 화전민들이 일군 마을이다. 첩첩산중에 물길로 막혀 있던 마을은 6·25 전쟁이 난 줄도 모를 정도로 외진 곳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한지를 만들던 벌랏마을은 40여 년 전만 해도 70가구 500여명 주민이 살았지만 젊은이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면서 이제는 21가구 35명만 남았다.

인구가 줄면서 활력을 잃었던 이 마을을 되살린 것은 마을에 널린 닥나무였다. 마을 주민들은 20여 년 전 닥나무를 가공해서 전승이 끊겼던 한지생산을 다시 시작했다. 2005년에는 농촌진흥청이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하면서 주민들은 전통 한지의 맥을 계승하고 한지를 이용한 공예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지원금으로 한지 공동작업장도 만들었다. 또 벌랏마을은 2010년 농진청이 선정한 ‘전국의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선’에 선정돼 주목을 받았다. 2013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모한 신재생에너지 융·복합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집집마다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했다. 이 마을은 전기를 직접 생산해 전기요금 부담을 덜고 있다.

한지를 제작하는 데 그쳤던 오지마을은 재미와 예술이 더해지면서 가족 단위 뿐아니라 단체 체험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는 5000명 정도가 다녀갔고 마을은 숙박비 등 67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벌랏 한지마을에서는 닥나무를 원료로 한 전통한지 체험과 별보기, 생태, 나무곤충 만들기, 천연염색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한지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를 살펴보고 발을 이용해 한지를 뜨는 과정, 전통 한지를 활용해 부채 등을 만드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이 마을에서 한지체험을 하려면 미리 예약하는 게 좋다. 계절별로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도시민들이 농촌을 배우기에 제격이다. 봄에는 장아찌 만들기, 산나물 깨기, 손 모내기 체험, 여름에는 반딧불이 관찰, 물고기 잡기, 감자 캐기, 가을에는 감 따기, 겨울에는 닥나무 삶기 등이 가능하다. 한지공예품 만들기, 한지염색, 한기 뜨기, 한지 말리기는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숙박을 하려면 주민들이 운영하는 7곳의 민박집이 있다. 청원 문의문화재단지, 대통령의 옛 별장인 청남대, 대청댐, 대청호미술관 등 주변 볼거리도 풍부하다.

주민들은 고사리, 취나물, 두릅, 칡 등 산나물과 할머니들의 손맛이 담긴 민들레, 질경이, 참외, 감, 더덕, 도라지 등 다양한 장아찌를 판매하고 있다.

마을과 바깥세상을 잇던 옛길은 대청호 오백리길의 제16구간인 벌랏한지 마을길로 지정됐다. 소전2리 보건소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벌랏마을을 관통한 후 임도를 지나 소금재로 올라가다 보은군 회남면 남대문리를 거쳐 회남면사무소에서 끝난다. 5시간 남짓 걸리는 10㎞ 길이의 도보길이다.

한지작가 이종국씨는 10년 전 이 마을로 찾아 들어와 한지 복원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씨는 닥나무를 재배한 뒤 전통기법 그대로 한지를 뜨고 있다. 자신이 직접 만든 한지를 이용해 종이항아리, 부채, 한지조명 등 다양한 문화상품을 만들고 있다. 이씨의 작품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선보였고 매년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다. 지금은 문의중학교 맞은편에 자신의 갤러리를 마련해 벌랏마을을 알리고 있다.

김필수(64) 마을운영위원장은 2일 “벌랏마을은 녹색으로 염색한 비단 옷을 지어 입으신 어머니의 품안에 다소곳이 안긴 어린아이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안식처”이라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청정지역”이라고 소개했다.

청주=글·사진 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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