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서울 지명 3분의 1, 종로 지명 3분의 2가 일본식 이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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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의 일제 식민통치 이후 70년이 흘렀지만 우리 삶 곳곳에는 여전히 일본의 흔적이 존재한다.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는 은어나 비속어뿐 아니라 지명과 행정용어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일본의 잔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명·행정용어에 남아 있는 일본식 표현=종묘와 창경궁과 맞닿아 있는 서울 종로구 원남동의 원래 이름은 순라동이었다. 1911년 일본이 창경궁(昌慶宮)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하고 동물원으로 바꿔버리면서 ‘창경원의 남쪽’이란 뜻에서 ‘원남(苑南)’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은 모래밭을 뜻하던 사평리에서 1914년 ‘새로운 모래’ 신사(新沙)라는 뜻의 신사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제가 ‘식민통치로 새 시대가 열렸다’는 뜻을 담았다는 설이 있다.

2003년 서울시를 중심으로 원남동의 지명을 순라동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원남동의 어원에 대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고 익숙한 이름을 유지하려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컸다. 종로 일대에는 이외에도 인사동 옥인동 관수동 등 일제가 ‘창지개명’했던 이름이 상당수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 지명의 3분의 1, 종로구의 경우 3분의 2가 일본식 이름이라고 추산한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 관계자는 “지명 변경은 지자체가 주민 의견을 반영해 시에 안건을 올리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며 “지역에 여러 의견이 있고 지명의 유래에도 여러 설이 존재하다보니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제와 행정용어에도 일본식 표현은 남아 있다. ‘유치원’은 일본학자가 독일어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을 번역한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 유입된 용어라고 추정된다. ‘유치(幼稚)’라는 단어에는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와 함께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뜻도 들어 있다. 지난해 말 교육 당국은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변경하는 안을 내놓았고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아직 진전이 없다.

◇‘기라성’ ‘도토리 키 재기’ 일상 언어 속 일본 흔적=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표현에서도 일본의 흔적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기라성’은 ‘반짝이다’라는 뜻의 일본어로 ‘기라’에서 나온 표현이다. ‘도토리 키 재기’도 일본어의 관용어를 한글로 그대로 옮긴 것이다. ‘무대뽀’는 ‘막무가내’라는 뜻의 일본어 ‘무데뽀’가 그대로 쓰이고 있는 사례다.

일용직 노동을 뜻하는 ‘노가다’, 끝났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시마이’, 흠을 나타내는 ‘기스’, 구역을 뜻하는 ‘나와바리’, 줄표(-)를 일컫는 ‘다시’ 등도 모두 일본에서 건너왔다. ‘∼의’라는 조사는 일본어 ‘노(の)’의 영향을 받았다. 생략해도 큰 무리가 없지만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된다.

일제시대에 도입된 제도와 학문 등이 많다보니 전문용어에서도 이런 경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수소 탄소 질소 같은 원소명이나 공소 항소 형사 등 법률 용어, 회장 사장 과장 계장 같은 직제 용어 등은 모두 일본식이다. 대외적으로는 주무관이란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7급·8급 공무원의 공식 명칭은 여전히 ‘주사보’와 ‘서기’로 모두 일본식 계급 명칭의 잔재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지난 5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연구팀이 20대 대학생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일본어 잔재 설문조사’에서 20대가 자주 쓰는 일본말로 ‘기스(흠)’ ‘간지(멋)’ ‘닭도리탕(닭볶음탕)’ ‘다데기(다진 양념)’ ‘뽀록(들통)’ ‘분빠이(분배)’ 등이 꼽혔다. 특히 응답자의 66.7%가 일본어 잔재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접하는 매체로 인터넷을 꼽았다.

서 교수는 2일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접한 이런 단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알리고 개선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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