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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복실] “우리 남편은 로또예요”

드라마에 대리만족하는 아내 이해했으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로또 부부의 비결

[청사초롱-이복실] “우리 남편은 로또예요” 기사의 사진
3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친구들이 웃으면서 가정주부로 사는 법을 알려줬다. “복실아! 너 집안일은 오후 다섯 시부터 시작해야 해.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올 때쯤 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루 종일 일한 사람 같아 보여. 아니면 집에서 놀면서 무엇을 했느냐는 말 들어.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거든.”

전업주부인 친구들의 산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다. 오죽하면 오후 5시부터 집안일을 시작하라고 할까. 사실 내 남편은 다른 집에 비해 가정일에 많이 참여하는 편이다. 바느질, 다림이질 실력도 좋다. 옆에서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한마디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대가는 폭풍 잔소리.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목소리가 더 커진다.

지난주 동창모임에 갔다. 다들 50대 중년 여성들이다. 공통으로 하는 말. “요즘 TV를 못 보겠어.” 벌써 노안이라 TV를 오래 보면 눈이 침침해지고 더 피곤해진단다. 그래도 좋아하는 드라마 한 편씩은 있었다. 주말에 어쩌다가 드라마 보고 있으면 남편은 꼭 한마디한다.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왜 보고 있어? 시간 낭비, 전파 낭비야.” 아니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드라마를 본다고. 그걸 못 참고 타박을 한다. 멋진 여주인공을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 아줌마의 즐거움은 심리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환산하기 어려운데 남자들은 몰라도 정말 모른다. ‘일주일 동안 힘들었으니 주말에는 드라마 보면서 쉬어’ 이렇게 말하면 좋으련만 그건 꿈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남성들은 “월급봉투째 갖다 바치는 남편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큰소리친다. 다시 태어나면 대한민국 주부로 태어나고 싶다는 남성들도 봤다. 힘들고 고달픈 직장을 안 다녀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느냐는 거다.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분들을 보면 진심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말 편하고 좋아 보일까? 발을 동동거려야 하는 워킹맘의 고충을 아시기는 하는 걸까? 육아와 가사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생각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 한번 해보실래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나온다.

2012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겠는가?’라는 통계 조사에서 남성의 43.6%가 ‘다시 하고 싶다’고 긍정적인 답을 했다. 여성의 44.8%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무심하게 답했다. 누군가가 결과에 대한 분석을 했다. 여성들이 남편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서 그런 거란다. ‘가사와 육아 같이하기’만 실천해도 점수는 확 오를 텐데 아마 그 요구사항도 큰 기대 속에 포함될 것이다.

지난달 공무원 임용동기생들이 부부동반으로 점심을 함께했다. 우리 동기생은 전부 104명이다. 그 가운데 한 부인이 한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생전에 로또에 당첨되는 꿈을 갖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당첨이 안 되었어요. 그게 쉽지않잖아요.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남편과 결혼한 것이 제 인생의 로또였네요.”

그 부부를 보면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에서 남자 주인공인 잭 니콜슨이 “당신은 나를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라고 한 대사가 생각난다. 다 하기 나름인 것이다. “우리 남편이 로또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가 부럽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 당장 오늘이 중요하다. 아! 그럼 오늘은 3시부터 집안일을 시작해 볼까? 주말에는 드라마도 안 보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노력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로또 남편 로또 아내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이복실 숙명여대 초빙교수·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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