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노동시간 단축이 핵심 개혁과제다 기사의 사진
출근길 교통체증이 눈에 띄게 완화된 것을 보고 휴가철임을 깨닫는다. 공기도 좋아졌다. 휴가철이나 설·추석연휴 때면 농담으로 이런 얘기를 한다. 수도권 인구가 이 정도면 적정한 것 아닌가. 연휴 막바지에 수도권 진입로를 딱 막고, ‘지금 이대로’ 각자 위치에서 살자고. 이는 물론 만부당하기도 하지만, 어지간한 독재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일 년 내내 7월말∼8월처럼, 혹은 그 절반만이라도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끊이지 않도록 하면 어떤가.

연·월차 휴가제도가 몇 차례 바뀌고, 휴가사용촉진제 등 휴가를 많이 쓰도록 하는 정책이 나왔지만, 직장인들의 휴가는 별로 늘지 않았다. 2011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연차휴가 발생일수는 평균 11.4일이지만, 연차휴가 소진율은 61.4%에 그쳤다. 직장문화 탓이라고 하면 책임 소재가 흐려진다. 초과근로를 시켜서 사람을 줄이거나 늘리지 않아야 유능하다고 평가하는 최고경영진과 노동시간 규제의 시늉만 내는 정부 탓이다. 고용노동부가 휴일근로시간을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3년도 넘었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기업체 부담 증가’ 타령만 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 장시간 근로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 2위를 다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노동시장 개혁은 한마디로 청년 일자리 만들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역점 추진 중인 임금피크제 도입은 기성세대와 청년이 윈-윈 하는 고용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영계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법적 정년연장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마땅히 필요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임금피크제에 반대하는) 대기업 노조=청년일자리 창출의 적’이라는 단순한 프레임(인식의 틀)으로 개혁대상을 규정짓고 있다.

장시간 노동의 폐해는 미처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지만, 임금과 위험부담의 불평등, 높은 산재율, 청년취업난과 낮은 여성고용률 등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만 언급하자. 임금부터 줄이라고 할 게 아니라 노동시간을 먼저 줄이면 사회 전체적으로 거의 모두에게 이득이 돌아간다. 더구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일단 채용하면 해고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필요한 예비인력을 포함한 총 인력수요보다 늘 적은 인원을 고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실제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긴 시간 버티지 못하고 신규채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도 노동시장 구조개혁 과제에 물론 포함돼 있지만, 뒷전이다. 휴일근로시간을 초과근로에 포함시키는 법 개정은 주당 근로시간 한도에 대한 폭넓은 예외 인정 등으로 유명무실해질 전망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물론 어려운 과제다. 경영계는 적어도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떠안아야 하고, 대기업 노동자들은 당연히 줄어드는 임금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대타협이 필요하다. 또한 연차휴가 미소진, 초과근로 규정과 일·가정 양립 제도 위반에 대해서는 과도기적으로 사용자를 엄벌에 처하거나 막중한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과제는 임금피크제도, 청년일자리 창출도 아닌 근로시간 단축이다. 청년일자리는 그 개혁의 성과로 나타날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의 우선적 대상은 노동자를 경제성장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고정관념이다. 경제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중시할 때다. 그러고 나서야 고용률과 성장률도, 출산율도 회복될 수 있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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