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은밀한 ‘사바사바 문화’에 아물날 없는 한국병 기사의 사진
‘사바사바: 뒷거래를 통해 떳떳하지 못하게 은밀히 일을 조작하는 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

일상생활에서 종종 쓰이는 ‘사바사바’라는 말의 어원에 대한 가설 중 하나는 일본어 차용설이다. 사바는 고등어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 순사에게 당시 구하기 어렵던 고등어를 뇌물로 제공하면 “아! 사바사바”라고 반색하면서 청탁을 잘 들어준 데서 지금의 ‘사바사바’란 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가설의 신빙성을 떠나 일을 잘 해결하려면 권력자에게 ‘기름칠’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사바사바 문화’가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는 고질병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시대마다 형태는 달랐지만 어떤 일을 도모하는 데는 청탁과 뇌물이 필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과 정치인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부패비리가 중대 범죄로 인식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온적인 처벌로는 병폐를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광복 직후 ‘원조물자 짬짜미’에서 군사정권 ‘개도국형 부정부패’로=정권과 기업인이 결탁하는 형태의 부패는 피폐할 대로 피폐했던 광복 직후에도 존재했다. 일제가 남긴 재산(적산·敵産)과 미국에서 받은 원조물자를 불하(拂下)하는 과정에서 ‘짬짜미’가 시작됐다. 기업인들이 헐값에 국가 재산을 받는 대신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대주는 후진국형 부패였다.

국가의 천연자원을 팔아 벌어들인 외화를 불하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만연했다. 대표적 사례가 1952년 ‘중석불 사건’이다. 이승만정권은 해외에 중석을 팔아 벌어들인 외화(중석불)를 민간상사에 헐값에 팔아넘겼다. 당시 중석불로는 비료나 양곡을 살 수 없게 돼 있었지만 기업인들은 긴급을 요한다는 명목 아래 밀가루와 비료를 수입했다. 이를 농민들에게 비싸게 팔아 500억원에 달하는 폭리를 취했다. 부당거래에 국회의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형식적 조사로 끝났고, 기업인들은 5년이 지나서야 집행유예형을 받는 선에서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앞선 정부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던 군사정권도 다를 바 없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개발정책이 시행되면서 오히려 부패는 더 확산됐다. 1969년 조양건설로부터 뇌물 1600만원을 수수한 김대만 부산시장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토목공사를 진행할 때 정치인들에게 헌금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바치는 일은 관행처럼 굳어졌다.

자동차·정유·시멘트·철강 등 중공업 기반 사업의 독점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뇌물이나 정치자금을 수수하는 일도 다반사였고, 각종 인허가 및 납품권이 비밀스럽게 거래됐다. 농어촌개발공사 차균희 총재는 한국냉장회사 신축공사 낙찰 사례금으로 3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해 재판에 넘겨졌다. 지하수공사 장춘권 사장과 정원영 서울시 수도국장, 정의석 한국주철관공업 대표는 납품비리에 연루돼 구속 기소됐다. 대검 관계자는 4일 “당시 검찰권이 정권에 의해 제한돼 있던 점을 감안하면 드러나지 않은 비리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민정부 이후 곪아터진 고위공직자·기업인 ‘부패사슬’=부패비리가 사회문제로 본격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 들어서부터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 대변되던 검찰은 고위 공직자 부패에 우선 칼을 댔다. 93년 국방부와 군의 수장들이 뇌물을 받고 수송기·잠수함 사업 수주에 개입한 ‘율곡비리’ 사건이 터졌다. 검찰은 이종구·이상훈 전 국방장관과 한주석 전 공군참모총장, 김종호·김철우 전 해군총장을 구속 기소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와 관련해 9억원의 뇌물을 받은 안병화 전 한전 사장도 재판에 넘겨졌다.

이런 분위기는 95∼96년 전직 대통령 2명을 부패 혐의로 법정에 세우면서 정점을 찍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국외대 이은영 법학과 교수는 ‘신뢰사회 구현을 위한 부패방지 방안’이란 논문에서 “권력의 정점이 부패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고위관료도 부정을 탐닉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는 동안 부패는 부지불식간에 온 국민의 생활 속으로 확산됐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등 대통령 친인척도 부패에 연루돼 검찰 청사 앞 포토라인에 서야 했다.

98년 외환위기 사태를 거치면서 부패수사의 타깃은 기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한 부장검사는 “모든 부패사슬은 비자금 등으로 종잣돈을 마련하는 기업비리에서 출발한다”며 “2000년 이후 기업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탈세 사건과 대우그룹·새한그룹 분식회계 사건을 비롯해 기업의 비자금 조성 방법인 탈세·배임·횡령 수사가 끊이지 않았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도 2000년대 중반 구속 기소됐다.

◇“미온적 처벌로는 부패 해결 어려워”=부패청산을 위한 노력에도 여전히 사바사바 문화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서 보듯 여전히 기업과 정치인이 결탁한 부패범죄가 반복되고 있다. 원전비리와 방산비리는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10여년 전과 비교해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지난해 5.5점(10점 만점·높을수록 청렴)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미온적 처벌을 꼽는다. 뇌물죄는 양형기준 준수율이 가장 낮은 범죄로 꼽힌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3년 법원의 뇌물죄 1심 판결을 분석한 결과 기본형량이 7∼10년인 1억∼5억원 뇌물수수 범죄의 평균 형량은 5년7개월이었다. 집행유예 비율도 20%에 달했다. 연구를 담당한 김혜정 영남대 로스쿨 부교수는 보고서에서 “입법 취지대로 무거운 형벌을 선고·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양형과정에 다양한 요소가 고려되고 타협이 개입하면서 법적용 왜곡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최근까지 이른바 ‘3·5제 판결’(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로 비리 기업인과 공직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왔다. 2008년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 부실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를 받았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기업총수들은 3·5제 판결의 수혜자였다. 또 특별사면이 수시로 이뤄졌고, 이번 광복절에도 기업인 특사가 단행되리란 관측이 많다. 이 교수는 “부패에 가담함으로써 받게 되는 처벌보다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계산이 서게 되면서 부패 욕구가 자극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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