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상근] 좀비영화의 진실 기사의 사진
여름철에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더위를 식히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피서법이다. 공포영화가 주는 서늘한 느낌으로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어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는 영화를 납량(納?) 특집이라 부른다. 요즈음은 소복을 입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전설의 고향’ 스타일의 구닥다리 귀신은 별로 인기가 없다. 호러 무비의 최신 동향은 단연코 종말론과 결합된 좀비영화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 변종 때문에 인류가 대부분 좀비로 변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떼로 달려드는 좀비 괴물들과 극한투쟁을 벌인다.

그러나 좀비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은 사실 좀비들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인간들이다. 낯선 사람에게 식량과 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살인과 배신을 서슴지 않는다. 거의 짐승 수준이다. 극단의 상황에 내몰린 인간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숨겨졌던 본성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근본부터 악한 존재인가. 더위를 피하기 위해 납량특집으로 보는 좀비영화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철학적 질문이다.

좀비영화에는 늘 믿음직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떼로 달려드는 좀비들의 공격을 용감하게 막아내는 영웅들이다. 좀비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그들은 대부분 경찰관이었거나 특수부대원 출신이라는 설정이다. 국가 공무원들이다. 그들에게 행정적인 지시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휘부는 이미 좀비들의 공격으로 와해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민들을 위해 국가나 군대의 명령을 끝까지 완수한다. 같은 임무를 수행하던 다른 동료들이 죽거나 배신을 일삼아도, 주인공들은 끝까지 맡겨진 공적 임무를 수행한다.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었던 좀비 바이러스는 그 주인공들의 활약과 희생으로 마침내 종결된다. 좀비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세상에 종말이 닥쳐도 저런 영웅들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란 희망 때문이다.

‘연평해전’이란 영화를 보면서 어떤 좀비영화를 보는 것보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 영화의 주제는 한마디로 ‘전직 대통령이 군을 외면하는 사이에, 북한의 기습공격을 받은 젊은 청년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군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생각하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혹여 이런 생각을 품지 않을까? 대통령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이렇게 외면하는데, 왜 우리는 국가의 명령을 받고 적과 싸워야 하는가? 진정한 나라의 영웅은 통수권자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명예로 아는 사람들이다. 좀비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영화 ‘연평해전’에서는 적과 끝까지 맞서 싸웠던 대한의 용사들을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더욱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것은 이른바 보수 언론의 ‘연평해전’ 띄우기다. ‘천만이 봐야 할 영화’라는 공개적인 협찬문구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말 그대로 보수적인 가치를 상황적 가치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정치적 성향을 말한다. 그 보수적 가치의 핵심은 전통적인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외부의 적으로부터 한 나라의 유구한 역사적 전통과 가치를 지키는 일이 보수의 핵심 가치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이런 영화를 국가 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보수 언론이 한 나라의 기초를 흔드는 이런 영화를 띄우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보수는 보수적이지 않고, 진보는 진보적이지 않은 이 이상한 나라. 한여름에 나는 지금 더위를 먹은 것일까?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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