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분단痛 70년… 南北, 증오를 키우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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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비극은 한반도 역사에 탄흔의 상처를 깊숙이 새겨 넣었다. 분단 이후 남북은 급변하는 세계질서에 휘말린 채 격랑의 세월을 흘려보냈다. 머지않을 것이라 여겼던 통일은 분단 이후 70년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통일에 대한 논의와 열의마저 시들해지고 있다.

◇이념전(戰)에서 경제전(戰)으로=50·60년대 극단적인 냉전 상황 속에서 남북은 오히려 내부적으로 통일에 대한 열망이 커져갔다. 1950년 6·25전쟁 이후 제네바 정치회담(54년)과 반둥회의(55년) 등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 이승만정부가 붕괴되면서 남북 교류·협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통일운동이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오히려 북한이 더욱 ‘공세적’으로 나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북한은 분단 직후 비교적 경제 상황이 나았던 점 등을 무기로 교류와 협력을 주도하려고도 했다.

5·16쿠데타로 남측에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양측은 체제 경쟁에 돌입했다. 이념의 정통성에 더해 ‘잘살아 보세’로 대표되는 경제력 우위 확보 대결이 막을 올렸다. 이는 곧 군비 경쟁으로 확대됐다. 양측 간 전쟁 가능성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며 남한 내부에서도 안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총력전이 시작됐다. 6·25전쟁 이후 대립과 갈등이 최고조로 펼쳐지던 시기였다.

◇저무는 냉전시대, 짧았던 대화=1970년대는 미국과 중국, 미국과 소련 사이의 관계 완화로 남북한 역시 전략적 대화 체제로 넘어가던 시기다. 1972년 7월 4일 남북은 미국의 ‘닉슨 독트린’에 맞춰 공동성명(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입북해 산파 역할을 했다.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을 내세운 이 성명은 향후 남북협력의 기초적인 틀을 구축한다. 하지만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 합동군사훈련 반대 등을 내세우는 갈등의 근거로도 작용한 ‘양날의 검’이었다. 이어 12월 남북은 각각 유신헌법과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며 독자 노선을 확립한다.

이 성명에 의해 남북조절위원회가 설치됐지만 1973년 북한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대화가 중단됐다. 이어 1974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 암살기도,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하지만 냉전이 와해되는 분위기에서 양측이 강경하게 자기 목소리만 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 결과 남북은 쌍방 외교가 아닌 다자 외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남한에 북한은 ‘통미봉남’=80년대 우리 정부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잇달아 개최하며 체제 경쟁에서 우월한 위치를 선점했다. 전두환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등 공격적인 외교 전략을 수립했다. 노태우정부도 ‘7·7선언’ 등 체제 우월성을 바탕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북방정책을 펼쳤다.

북한은 이런 흐름에 맞서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지 테러로 불만을 터트렸다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해복구 지원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 이산가족 교환방문 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와 대화하기 시작한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북한은 1974년 남북 대화가 중단된 이후부터 점차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주장하고 직접 대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80년대 들어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이런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90년대 핵무장과 더불어 북한의 주요 외교 전략으로 자리 잡게 됐다.

◇고립된 북한의 벼랑 끝 전술=90년대 들어 우리는 중국, 러시아와 잇따라 수교하며 북한을 고립시켰다. 위기의식에 가득 찬 북한은 핵개발 등 비대칭전력 개발을 가속화한다. 우리가 흡수통일 전략을 추진하는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 시기 남측은 DJP연합을 통해 5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내면서 대북 정책도 대폭 선회했다. 김대중정부는 햇볕정책을 추진하며 본격적인 화해와 협력을 모색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 열리며 장밋빛 전망도 나왔지만 2000년대 들어 북한이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북한은 핵을 무기로 ‘통미봉남’ 전략을 강화했고, 우리도 이명박정부에 들어서면서 대북 강경책으로 전환했다. 이어 금강산 관광객 피살, 천안함 피폭, 연평도 포격 등 군사적 충돌이 이어졌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이런 기조가 이어지면서 남북 관계는 분단 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별다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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