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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최범] ‘한국의 멋’이 문제다

인사동 맨홀 뚜껑을 왜 바꾸겠다는 건지… 추상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가면 안 돼

[청사초롱-최범] ‘한국의 멋’이 문제다 기사의 사진
서울 인사동의 맨홀 뚜껑을 바꾼단다. 서울시는 인사동길을 맨홀 디자인 시범거리로 정하고 전통 매듭 문양을 새긴 맨홀 뚜껑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별의별 시범거리가 다 있는 이 계몽주의적인 시범국가(?)에 또 하나의 아이템이 추가될 모양이다. 그런데 내 생각에 이것은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타산지석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공모와 심사를 통해서 선정했다는데, 과연 이 과정에 디자인 전문가가 참여하였는지 의심스럽다. 내가 아는 한, 평균적인 디자인 전문가라면 절대로 이런 디자인을 만들지도 뽑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서울시는 이것이 ‘한국의 멋’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건 제쳐놓고라도 먼저 이것 한 가지를 묻고 싶다. 한국의 멋을 표상한다는 문양을 맨홀 뚜껑에다 새기고 정말 그걸 밟고 다니겠다는 건가. 과연 그것이 한국의 멋에 대한 올바른 대접인가. 하기야 맨홀 뚜껑뿐이랴. 청동향로 모양의 재떨이, 장독대에 있어야 할 옹기 항아리를 공원 한가운데의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것이 지금 이 나라에서 한국의 멋을 대접하는 방식이기는 하다.

이건 한국의 멋에 대한 상찬이 아니라 모독이다. 일부러 엽기스럽게 만든 팬시 제품이 아니라면 말이다. 모든 것은 격이 있어야 하고 때와 장소가 맞아야 하는 법이다. TPO, 다시 말해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은 패션에서만 지켜야 할 것이 아니다. 전통 매듭 문양의 맨홀 뚜껑은 서울시 공무원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인사동에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현재 맨홀 뚜껑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심벌마크가 가운데 있고, 바탕에는 전통 문양도 은근하게 시문되어 있는, 이것은 왜 한국의 멋이 아니란 말인가.

문제는 전통에 대한 주술적(呪術的) 태도이다. 한국의 멋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누가 느끼는 것이고 누가 정하는 것인가. 나는 한국의 멋이라는 것이 없다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획일적인 마법의 주문(呪文)처럼 사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한국의 멋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공무원의 생각과는 달리, 공공사업을 정당화하는 언어가 될 수 없다. 이것은 5000억원을 들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세계 디자인의 메카’라는 허황된 수식어 하나로 포장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각종 공공사업의 심의에 많이 참여하는 편이다. 주로 공공디자인 공모 사업들이다. 그런 자리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아는가. 바로 ‘한국의 미’니 태극이니 오방색이니 하는 것들이다. 이런 말들은 사업의 종류와 성격을 가리지 않고 각종 공모 사업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는 용역 발주자와 수주자 사이에서 통용되는 공식화된 암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할 공공사업들이 이런 막연하기 짝이 없는 추상적인 언어에 지배되고 있는 것이 지금 이곳의 현실이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의 멋을 표현하라는 공모 조건이 이미 특정한 형태를 전제하고 있다. 여기에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현대적인 해석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어떠한 사유도 배제한 채 오로지 정답 찾기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결국 상투적인 추상성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 즉 전체주의 사회라고 보아야 한다. 추상성이 철학적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규율하는 언어로 작동되는 체제가 바로 전체주의이다. 하나로 고정되고 선험적으로 규정된 한국의 멋이라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다. 5000만명에게는 5000만 가지의 한국의 멋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멋은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

최범 디자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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