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한류’ 르네상스 꽃 피우다 기사의 사진
광복 이후 70년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세계에 한국문화를 전파한 주역들. 왼쪽부터 1992년 '난 알아요'로 음악혁명을 일으킨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 장면, 2012년 '강남스타일'로 월드스타가 된 싸이의 무대, 2014년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에서 열풍을 일으킨 김수현과 전지현의 드라마 포스터, 2002년 '겨울연가'로 일본 시장을 강타한 '욘사마' 배용준과 최지우의 일본 광고물. 바탕에 깔린 배경 사진은 1961년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열창하고 있는 한명숙. 국민일보DB
1945년 광복과 함께 문화예술은 척박한 땅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서민의 한과 흥의 정서를 담아내는 데 치중했다. 분단과 6·25전쟁, 근대화와 민주화 등 격동기를 거치며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고, 시대에 맞서 철퇴를 맞기도 했다. 한민족의 삶 속에서 70년을 담금질한 대중문화는 세계로 뻗어나가며 한류의 첨병으로 자리 잡았다. 르네상스를 맞이한 문화예술을 시대별로 되짚어본다.

# 1945∼1960년대: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아픔을 담다

남인수의 ‘가거라 38선’과 현인의 ‘신라의 달밤’으로 광복의 기쁨을 노래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현인의 ‘전우여 잘자라’ 등 진중가요가 널리 불렸다. 서민들은 1·4후퇴 때의 애틋한 일화가 담긴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피란시절 기억을 노래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전쟁 당시 어린 딸을 잃은 아픔을 담은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고개’로 애환을 달랬다.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로 시작된 1960년대는 가요를 중심으로 대중문화가 싹을 틔웠다. 초반에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 한명숙을 비롯해 최희준 현미 패티김 등 미8군 쇼 출신 가수들이 출현했다. 중반에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히트를 치고, 키보이스 등 그룹사운드도 등장했다. 후반에는 번안 가요 붐이 불었으며 음악감상실 세시봉을 중심으로 트윈폴리오 등 포크음악이 대세였다.

60년대는 라디오의 대중화와 함께 TV시대이기도 했다. 61년 KBS, 64년 TBC, 69년 MBC TV가 잇달아 개국했다. TV 드라마가 막이 오르며 단막극과 일일연속극이 방송됐으며,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등 코미디언들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스크린에서는 문희 윤정희 남정임이 트로이카를 형성하고, 신성일과 엄앵란이 콤비를 이루며 청춘영화의 붐을 이끌었다.

#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시대의 빛과 그림자

군사정권이 ‘3S’(섹스·스포츠·스크린)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대중문화는 미디어의 발전과 같이 성장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남진이 71년 복귀하면서 나훈아와 전라도와 경상도를 대표하는 ‘빅 라이벌’을 구축했다. 윤형주 송창식 양희은 등 포크 가수들의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청통맥’(청바지·통기타·생맥주)의 청년문화가 꽃을 피웠다.

자유분방한 청년문화는 대마초 파동에 휩쓸린 가수들의 방송·음반 활동 금지, 공연윤리위원회의 대중가요 대량 금지 등의 규제로 이어졌다. 77년 시작된 MBC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 등이 청년문화를 대신했다. ‘가왕’ 조용필의 탄생도 화제였다.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영자의 전성시대’ ‘고교얄개’ 등 청춘을 소재로 한 영화가 대거 나왔다.

‘미워도 다시 한번’ 등 최루성 신파영화가 인기를 끌었으며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은 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형성했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가 78년 홍콩에서 납북돼 남북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TV 드라마는 ‘아씨’ ‘여로’ 등이 히트를 쳤다. 드라마가 방송될 때면 거리가 한산했고, “문단속 잘하고 수도꼭지 잠근 후 시청하시라”는 안내 문구가 나오기도 했다.

81년 실시된 컬러 방송은 TV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드라마 ‘달동네’ ‘사랑과 야망’ ‘사랑이 꽃피는 나무’ ‘한지붕 세가족’ 등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83년 KBS ‘이산가족 찾기’는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고, 패티김의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와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이 히트했다. 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강수연이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아 영화 한류의 길을 열었다.

# 1990∼2000년대: 한류, 세계적인 브랜드로 르네상스를 열다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중문화의 르네상스가 펼쳐졌다. 연예산업의 성장과 한류 스타를 배출하는 토대가 됐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음악혁명으로 평가되고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다. 노래방 문화가 확산되고 신승훈 김건모 등 앨범 판매량 100만장을 돌파하는 밀리언셀러 가수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91년 민방인 SBS TV가 개국하고 95년 케이블 TV가 출범하며 쇼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 시청자를 사로잡은 히트 상품이 쏟아졌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사랑이 뭐길래’ ‘용의 눈물’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사랑받았고, ‘장군의 아들’ ‘경마장 가는 길’ ‘하얀 전쟁’ ‘서편제’ ‘접속’ 등 영화가 흥행했다. 99년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출범을 알렸다.

2000년대는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브랜드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됐다. 배용준의 ‘겨울연가’, 이영애의 ‘대장금’ 등 드라마가 아시아 시장을 강타했고, 김수현과 전지현의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 열풍을 낳았다. 드라마 한류는 K팝의 한류로 이어졌다. H.O.T로 점화된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 북미, 남미, 중동 등으로 무대를 넓혔다.

동방신기, 빅뱅, JYJ,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 등 아이돌 그룹이 해외 시장을 누볐고,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미국 빌보드의 벽을 넘으며 월드스타로 탄생했다. 영화계는 임권택에 이어 박찬욱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감독이 세계 3대 영화제를 휩쓸었다. 배우 전도연은 ‘칸의 여왕’에 오르고 이병헌은 할리우드에 안착했다. 최민식과 배두나도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예술 분야에서도 한류 바람은 거셌다. 발레리나 강수진,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등이 세계무대를 누비며 한류를 전파했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지난해 건축전에서 건축가 조민석이 커미셔너를 맡은 한국관이 사상 처음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미술전에서는 임흥순 작가가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한류는 지난 70년 동안 이어온 우리 문화의 저력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K팝 위주의 한류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한국적인 특징과 색깔을 가진 다양한 문화상품을 지구촌 곳곳에 어떻게 확산시킬지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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