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꼴찌 노태우’를 위한 변명 기사의 사진
박정희 44%, 노무현 24%, 김대중 14%, 이승만 3%, 전두환 3%, 김영삼 1%, 이명박 1%, 노태우 0.1%. 우리 국민들이 나라를 가장 잘 이끈 지도자로 평가하는 역대 대통령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한국갤럽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최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재임기간이 짧은 윤보선과 최규하는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단다.

이런 결과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유신 독재자 박정희가 왜 1등인가’ ‘분열의 정치를 한 노무현이 2등이라고?’ ‘건국 대통령이 3%밖에 안 된다니’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나라면 어떤 답을 할 것인지 잠시 고민해 봤다. 아마도 박정희를 첫 손가락에 꼽을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김대중 노태우 이승만 순으로 적어내지 않을까 싶다.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생각을 해본 것은 노태우가 0.1%로 최악의 꼴찌를 기록한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아서다.

노태우는 정치적으로 잘못이 많다. 전두환을 도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박정희 사후에 조성된 거대한 민주화 물결을 거꾸로 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덕에 5공 정권 내내 2인자 노릇을 했고, 차기 대권까지 거머쥘 수는 있었다. 집권기간 수천억원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이유 등으로 김영삼정부 때 사법 처리되는 수모를 겪었다. 국가 망신에다 국민을 분노케 했으니 두고두고 욕먹을 만도 하다.

그렇다고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하는 데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노태우의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은 실로 대단한 업적이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그간의 냉전체제가 자본주의의 일방적 승리로 굳어가는 국제질서를 꿰뚫고 전방위 자주외교에 돌입했다. 1988년 7·7특별선언을 발표한 뒤 헝가리를 비롯한 동구권 국가, 소련, 중국, 베트남 등과 차례로 국교를 맺어나갔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북방외교의 결실에 속한다. 공산권과의 발 빠른 수교는 우리 경제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노태우는 분단 이후 첫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이후 여러 정권의 통일방안은 모두 이를 뼈대로 수립된 것이다. 약 2년간 남북한 총리가 8차례나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고위급 회담을 열어 ‘남북기본합의서’를 탄생시켰다. 이는 지금도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기본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당시 총리를 포함한 회담 대표단은 상대방 국가원수를 예방해 자기 측 국가원수의 친서를 전달함으로써 화해협력을 강화해 나갔다. 이것이 그 후 남북 정상회담의 밑거름이 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노태우 집권 5년 동안 남북 간 군사충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태우는 내치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선언하고 5공 비리를 청산한 뒤 언론자유화, 지방자치제 부활 등으로 민주화를 진전시켰다. 노동계 등 권위주의 시절 억눌렸던 각계의 분노가 폭발해 사회혼란이 야기됐으나 특유의 ‘참는 정치’로 극복해냈다. 이런 그를 ‘우유부단한 물태우’라고 비판하는 것은 군사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의 단견이라고 본다.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수도권 신도시를 건설해 주택 200만호를 확보하는가 하면 연평균 8.5%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22년 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83세 노태우는 지금 수년째 와병 중이다. 혹 문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에게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많았다고 위로의 말을 건넬 생각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