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외국서 살다 온 다문화학생 ‘학교 부적응’ 심각 기사의 사진
러시아 출신 이세르게이(가명·16)군은 어머니 손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손이 남자처럼 커졌고 굳은살로 뒤덮여 있었다. 지난해 초 한국에서 재회하기 전까지 부모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몰랐다. 고려인인 이군 부모는 5년 전 한국에 와 공장·식당 등에서 일하며 러시아에서 할머니와 지내는 이군에게 생활비를 보냈다. 할머니 건강이 나빠져 이군도 한국에 왔다.

이군은 학교에서 한국말을 익히면 곧장 직장을 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국말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멍하니 딴 생각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기초학력도 부족해졌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투명인간처럼 생활하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나섰다.

다행히 담임교사의 권유로 예비학교를 운영하는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비학교는 이군처럼 한국말을 못하는 다문화학생을 위한 특별학급이다. 특별학급은 한국어와 문화를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이군은 한국말을 익히며 특별하게 이주여성 출신 다문화강사에게 일반 교과목도 배웠다. 이군은 6개월로 부족해 6개월 더 예비학교에 있었다.

어느 정도 한국말에 익숙해지자 이군은 다시 학교를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라도 할 생각이다. 담당교사는 만류한다. “지금 나가면 시급 5000원짜리 노동자다. 특성화고에 진학해 기술을 익히면 연봉 2000만원 이상 받는다. 조금만 견뎌라.” 하지만 이군은 “편하게 공부하는 게 죄송스럽다”며 뜻을 꺾지 않으려 한다.

◇미안해하는 부모, 적응하기 힘든 아이=다문화학생 중 이군처럼 외국에서 살다 온 경우 ‘중도입국자녀’로 분류된다.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복합적이다. 일단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 중국동포 자녀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대부분은 ‘ㄱㄴㄷ’부터 배워야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부모와 떨어져 지낸 탓에 제대로 훈육 받지 못한 경우도 많다. 생활습관을 고치는 데도 어려움이 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정우 박사가 ‘2011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분석해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도입국자녀의 사회교과 기초학력 미달률(24.39%)은 일반 학생(6.67%)보다 4배가량 높았다.

한국에 온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부모는 생계 때문에 아이에게 신경 쓸 여력이 많지 않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미안함이 커 생활습관을 고쳐주기도 어렵다. 정권 안산다문화지역아동센터장은 “중도입국자녀의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는 경향이 강하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더 비뚤어지지 않기만 바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강압적으로 학교에 보내도 문제가 불거진다. 필리핀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입국한 정민지(가명·15)양은 전형적 동남아사아인 외모를 갖고 있다. 학교는 꼭 다니라는 아버지 말을 거스를 수 없어 등교는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비행기 승무원이 꿈이라 키 크려고 아이들과 농구를 하고 싶었지만 끼워주는 친구도 없었다. 정양은 “학교에선 ‘얼음’이 돼요”라고 말했다. 학교에 들어가 몇 개월 지나자 “죽고 싶다”며 상담교사에게 털어놨고, 우울증 초기 증상을 보였다.

◇다문화교육 시스템 서둘러 완비해야=중도입국 학생은 지난해 5602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다문화학생(6만7806명)의 8.2%에 해당한다. 국제결혼자녀(국내 출생과 중도입국 포함) 중학교에 다니는 비율은 2012년 79.1%, 2013년 87.3%, 지난해 94%로 매년 높아지고 있지만, 중학생의 22.1%, 고교생의 24.1%는 학교밖에 머무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다문화학생이 학교에 적응하도록 서둘러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 2011년 3곳에 불과했던 예비학교를 올해 100곳으로 확대했다. 다문화학생을 위한 한국어교육과정(KSL)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다만 다문화학생의 증가폭을 따라가기에 아직은 역부족이다. 교육부가 시·도교육청과 일선 학교를 독려하지만 교사 수급, 예산 부족 등이 발목을 잡는다. 이 때문에 지역별로 배치되는 교사에서 차이가 난다. 교육부는 모든 예비학교에 다문화전담교사를 배치토록 권고했는데, 경남·부산은 배치하고 서울은 못하는 등 차이가 있다.

또 교육부는 학습에 도움을 주도록 기본 개념에 대한 참고자료를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서울 대동초 인민지 교사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사춘기에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도 많다. 공교육에 적응토록 하려면 한국어뿐 아니라 심리적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이도경 전수민 김판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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