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1부)] “독립운동 주도 한글 수호한 한국교회, 국가차원 재조명해야”

(제1부) 한국교회와 독립운동-(24·1부 끝) 국민일보 자문위원단 총평과 제언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1부)] “독립운동 주도 한글 수호한 한국교회, 국가차원 재조명해야” 기사의 사진
1919년 3·1운동 당시 거리에 나와 독립만세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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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가 광복 70주년 특별기획으로 지난 3월부터 연재한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기획 시리즈 1부 ‘한국교회와 독립운동’이 막을 내린다.

‘항일운동의 시발점 연해주를 가다’(국민일보 3월 2일자 25면 보도)를 시작으로 23회 시리즈를 이어오면서 국민일보는 일제강점기에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이 펼쳤던 독립운동과 구령(救靈)사역을 집중 조명했다.

교회사·역사신학자들로 구성된 국민일보 특별기획 자문위원단을 통해 한국교회의 독립운동에 대한 총평과 제언을 들어보고 향후 한국교회의 과제를 짚어봤다.

◇한국교회는 3·1운동의 거점, 재평가돼야=일제강점기에 민족 독립을 위한 한국교회의 활동 가운데 다시 들여다봐야 할 분야는 없을까. 자문위원단은 3·1운동을 주도하고 확산을 위해 힘쓴 한국교회의 활동이 한국사 차원에서 반드시 재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는 “3·1운동 당시 사실상 전국적인 네트워크는 교회 조직 밖에 없었다”면서 “교회가 민족 동력(動力)의 유일한 동원체제였고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군중의 모임이나 메시지 전파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가 당시 교회를 집중적으로 탄압한 것도 3·1운동의 거점을 교회로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용규 총신대 교수도 “우리 역사상 남녀노소, 지역, 성별, 신분을 초월해서 3·1운동 때만큼 하나로 뭉친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교회가 중심이 되어 전개될 수 있었던 데에는 시대적 안목을 가진 유일한 세력이 기독교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기독교 신앙을 지닌 인사 중에는 외국 선교사들과의 접촉, 외국 유학, 해외 선교대회 참석 등으로 국제적 상황 파악에 밝은 편이었다.

하지만 현재 중·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등에서 ‘기독교와 3·1운동’의 긴밀한 관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박 교수는 “3·1운동이 준비단계에서부터 활발하게 전개되기까지 기독교 역할이 지대했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며 “좌편향적인 역사관과 교회·기독학자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임희국 장신대 교수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을 앞두고 한국교회의 3·1운동 활약상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특히 당시 활동이 두드러졌던 기독여성들의 독립운동 분야가 구체적으로 다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글 지킴이’로 민족의 얼 지켰다=한글 보급과 수호에도 교회가 막중한 역할을 감당했다고 자문위원단은 평가했다. 당시 일제는 우리나라의 정치·군사·사회 등 주요 분야를 전부 ‘일본화’시키면서 한글과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 이후 관공서에서는 한국어 사용이 금지됐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일제의 집요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해방되는 날까지 한국어로 설교하고 찬양하고 기도했다”면서 “공공장소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를 쓰고 한글을 사용한 곳이 교회이며, 해방 이후 한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한글 교육을 담당한 곳 역시 교회였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당시 주시경 최현배 선생 같은 기독교 한글학자들은 우리 민족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정치·사회·군사 분야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지켜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임 교수 역시 “한글 보급과 발전이 이어지면서 교회가 자연스럽게 한글성경을 만들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작업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평가했다.

◇기독인의 국내외 독립운동, 실력양성운동도 조명돼야=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는 “일제 당시의 무장 항일투쟁 못지않게 중요한 활동이 ‘실력양성운동’이었다”면서 “이 운동을 주도한 곳이 바로 한국교회”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학교설립 등 활발한 교육사업 등을 통해 전문가들과 다양한 인재들을 배출했고 이들은 대한민국 건국에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전했다. 그는 “일제시대 한국교회의 교육사업과 인재양성 부분에 있어서 심층적인 연구와 추적·발굴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민 교수는 당시 크리스천들의 국내외 독립운동 활약상에 주목했다. 그는 “북간도 독립운동과 현순 목사의 임시정부·사회주의 활동, 김예진 목사의 폭탄 투척 등 크리스천들의 수많은 활동이 있었지만 연구는 미진한 상황”이라며 “연구자들이 없어 자료 발굴이 미미했고 교계의 관심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계 지원으로 연구진을 모으고 자료를 발굴하며 연구업적에 대한 장려도 이어지면 좋겠다”면서 “교회사연구학술원(가칭) 같은 단체의 설립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평화통일운동은 시대적 요청, 한국교회 하나 되기부터=자문위원단이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향후 과제는 ‘통일운동’ ‘평화운동’에 모아졌다. “남북평화통일에 앞서 분열된 한국교회부터 한목소리를 내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민 교수는 “통일을 위한 교회의 노력은 한국교회 내 통일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박용규 교수는 “거창한 기념행사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책임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라며 “교회가 사회적, 민족적 책임의식을 회복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화운동’을 주창한 이덕주 교수는 “우리가 무엇을 위한 광복인지, 무엇을 위한 통일인지 고민하다 보면 ‘평화’라는 해답에 도달한다”면서 “결국 교회는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통일로는 갈등만 반복될 뿐이기에 신뢰와 사랑을 동반한 평화운동을 펼치는 데 한국교회가 앞장서자”고 덧붙였다.

이상규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북한 인권신장운동’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복음화 운동에 앞서 이뤄져야 할 활동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운동에 교계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국내외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수 교수는 “통일운동은 통일 후에 어떤 국가를 지향할지 구체적인 방법과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이는 일제 때 ‘독립’만 얘기하다가 정작 해방 후에 혼란을 겪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떤 국가를 지향할지 지금부터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재찬 박지훈 이용상 이사야 양민경 최기영 김아영 기자 jeep@kmib.co.kr

‘분단 70년을 넘어 평화통일을 향해’ 프로젝트는 국민일보·한민족평화나눔재단 공동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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