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기석]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기사의 사진
입추가 지나자 아침저녁 바람 맛이 달라졌다. “늦더위 있다 한들 절서야 속일쏘냐. 비 밑도 가볍고 바람 끝도 다르도다.” 농가월령가의 칠월령을 흥겹게 되뇌인다. 하루하루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포도송이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크다. 만나는 이들마다 휴가 다녀왔느냐고 묻는다. 아직 다녀오지 않았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걱정스레 묻기도 한다. 언제부터 휴가가 여름철의 통과의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작은 수술을 한 아들이 아기들의 성화를 피해 한 닷새 집에 와 지내더니 ‘모처럼 휴가를 휴가답게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오늘 하루를 임시 공휴일로 정했다. 메르스 사태로 침체된 경기가 활성화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고, 한시적으로 고궁의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근거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임시 공휴일 지정이 가져올 경제 효과가 무려 1조3000억원에 이른다고 엉너리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법정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근로자 세 명 중 한 명은 쉬지 못한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들은 아기를 맡아줄 사람을 찾기 어려워 곤혹스러워했다. 광복 70주년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환기시키고 공유하는 데 집중되기보다는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에 삼켜진 느낌이다.

경제인을 포함한 광복절 특사가 단행됐다. 국가 발전, 국민 대통합, 국민 사기 진작이 사면의 원칙과 의미라 한다. 이번 사면은 어떤 범주에 속하는 ‘국민’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부정한 방법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비자금을 조성함으로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준 이들이 풀려나는 것을 보며, 벌금 낼 돈 100만원이 없어 일당 5만원의 노역을 감당해야 하는 또 다른 국민들은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는 광복 70주년이 곧 분단 70주년임을 우리에게 아프게 상기시켰다.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이 기막힌 세월, 그 젊은 몸들에 지울 수 없이 새겨진 분단의 상흔이 참으로 절통하다. 우리 역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히브리인들의 의식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이 애굽으로부터의 해방 사건이었다. 그들은 억압과 착취가 일상화된 세계를 벗어나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며 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야훼는 바로에 의해 제시된 할당량을 채우느라 몸과 마음이 다 사위어가던 사람들의 가슴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한 채 살아야 하는 현실은 당연한 세계가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세계였던 것이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는 세계는 우정의 가능성을 말살한다. 이웃은 생이 고단할 때 비스듬히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아니라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소외된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의 회복을 위해 신이 명령한 것이 바로 안식일 준수였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단한 노동의 시간을 중단해야 한다. 안식일은 스스로 행위의 주체가 되려는 일체의 욕구를 내려놓고 신의 창조 리듬 속에 온전히 머물러야 하는 날이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이나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 불안도 내려놓고 현재에만 집중할 때 삶은 축제가 된다. 저명한 신학자인 월터 브루그만은 불안을 자극하여 사람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현대의 정황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곧 저항이라면서 “안식일은 강요와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연대성에 비추어 사회의 모든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라고 말한다. 경제논리가 마치 블랙홀처럼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를 빨아들이는 것을 허용하는 한 우리는 부유한 노예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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