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2015 서울-롯데역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 청년이오. 여기가 그 남대문역(현 서울역) 분명 맞소. 해방되었으니 지금은 서울역일 것 같은데. 내 그리 알고 왔는데… 잘못 왔나 싶소. ‘LOTTE OUTLETS’란 저 붉은 간판은 뭐요. 그 옆 ‘LOTTE mart’ 간판은 또 뭐요. 대한민국 ‘서울역’이 언제 ‘롯데역’으로 바뀌었소. 며칠 전 거사를 위해 찾았으나 롯데역인지 서울역인지 감을 못 잡겠소.”

“여기가 서울역 맞습니다. 저 왼쪽 귀퉁이에 흰 아크릴로 작게 새겨져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밤에 찾으셨다면 더욱 못 찾을 겁니다. 붉은 LED조명 ‘LOTTE’ 상호가 역 중앙에 걸려 있어 서울역을 못 찾고 헷갈려 하는 이용객이 많습니다.”

“통탄할 일이오. 광화문 현판을 떼어 내고 상점 이름 건 것과 무엇이 다르오. ‘롯데 상점’은 어느 민족기업이오. 경부선 경의선 등이 모아지는 13도의 관문이 이 지경이라니…”

“한데 노인께서는 누구신데 광복 70주년 아침에 이 역 앞에 계십니까. 더구나 손에 수류탄을 쥐시고요.”

“눈여겨 봐주어서 고맙소 젊은이. 나 왈우 강우규(1855∼1920·독립운동가)이오.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란 자를 기다리는 중이오. 이 자가 부산에서 특별열차로 상경 중이오. 사이토와 친일파 등은 이웃을 핍박하며 남의 것을 훔쳤소. 십계명을 위반한 자들이오. 어찌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겠소.”

“어르신. 당신은 96년 전 이 서울역에서 사이토에게 폭탄을 던져 이듬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거사는 실패하였으나 그로 말미암아 백범 김구의 한인애국단, 김원봉의 의열단 등이 항일의 뜻을 이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저 구 역사 앞 ‘강우규 의사’가 당신이십니다. 역사(驛舍) 상업 건축은 쉬웠으나 동상 건립은 까다로워 4년 전 간신히 세울 수 있었습니다. 여한이 있으십니까. 열사께서는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셨죠.”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요’

“사이토를 처단 못했고 친일 세력은 제거되지 않았으니 내 어찌 여한이 없겠소. 100년이 흘러도 회개 않는 그들에게 어찌 면죄부를 주겠소. 나는 기다릴 것이오.”

1919년 9월 2일 오후 5시. 강 의사는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려 대기한 마차를 타려고 움직이던 사이토에게 폭탄을 투척했다. 4명이 죽고 33명이 다쳤으나 사이토 제거에는 실패했다. 강우규는 한 달 후 체포됐다.

강 의사는 함남 홍원에서 포목 장사 등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국권회복 운동과 예수 복음을 전하던 독립운동가 이동휘를 만나 예수를 영접하고 항일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일경의 탄압을 피해 간도, 연해주 등으로 옮겨 다니며 예수 복음을 전했고 광동학교를 세워 기독교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3·1운동 직후 ‘46세 이상’ 나이 제한을 둔 항일투쟁단체 ‘노인동맹단’을 조직, 청년들을 지원하고 북방외교를 통한 독립에 힘썼다.

1920년 4월 15일 공판기록 일부.

“피고가 신앙하는 종교는 무엇이며 어떠한 학문을 배웠느냐?”

“신교는 야소교 장로파를 믿고 십여세 때부터 한문을 배웠소.”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자 길림성 신흥동에서 광동학교를 설립해 청년 자녀를 교육하였느냐?”

“그리하였소.”

“청년들을 교육하면서 조선독립사상을 고취하였느냐?”

“그리하였소.”

“무슨 연고로 (함경도 원산) 최자남의 집에 오래 유숙하였느냐?”

“일년 동안 유숙하였소. 복음을 전하고 청년을 가르칠 학교도 세우기 위해 기부금도 모았소. 나라 잃은 사람이 오죽하겠소.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소.”

<후기> 지금 ‘서울-롯데역’에 가보라. 강우규 의사가 수류탄을 쥐고 있다. 동상은 잘 봐야 겨우 보인다.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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