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스포츠 드라마’ 국민에 힘과 용기 기사의 사진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왼쪽).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을 목에 걸고 감격해하고 있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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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면서 ‘빼앗긴 운동장’에도 봄이 왔다. 체육인들은 그해 11월 26일 조선체육회(1920년 창립·1938년 해산)를 재건하고 제11대 회장으로 여운형을 뽑았다. 조선육상경기연맹, 조선축구협회 등이 출범하며 걸음마를 내디딘 한국 스포츠는 6·25전쟁으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잿더미 위에서 다시 일어섰고 7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끝에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스포츠 강국’ 코리아=한국 스포츠의 저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인물은 손기정(1912∼2002) 선생이었다. 손 선생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29분19초라는 당시 뛰어난 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그의 금메달 낭보는 20세기를 통틀어 한국 체육사에서 가장 큰 뉴스라는 찬사를 받았다.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 맨 위에서 고개를 숙인 손 선생은 나라 잃은 민족의 현실을 대변했다.

광복 후 한국은 1947년 조선올림픽위원회(KOC)를 설립,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했다. 다음 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어 그해 7월 런던 하계올림픽에 선수 50명과 임원 17명을 보내 동메달 2개(역도 김성집, 복싱 한수안)를 따냈다. 전쟁 중이었지만 한국은 1952년 헬싱키 하계올림픽에도 참가해 역시 역도와 복싱에서 동메달을 1개씩을 획득하며 선전했다. 한국 스포츠는 1970년대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76 몬트리올 하계올림픽에서 양정모는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한국은 1960년대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를 개최할 능력이 없었다. 1970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했다가 경제 상황 등으로 개최권을 반납하기도 했다. 그런 한국이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자 세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올림픽에는 북한과 쿠바 등을 제외한 160개국 1만36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12개와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당당히 4위에 올랐다. 한국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했다.

태릉선수촌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스포츠의 요람이었다. 1966년 6월 28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540평 규모로 건립된 태릉선수촌은 그해 11월과 12월 체육관 2개동을 준공했다. 1968년 4월 서키트트레이닝장과 역도장, 레슬링장이 들어선 데 이어 4개월 뒤 8월 육상장, 1970년 3월엔 실내 수영장을 개장하면서 종합 트레이닝 센터로 면모를 갖추고 이후 국제대회 금메달의 산실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저력을 보여준 대회였다.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이 이끈 한국 대표팀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강호들을 연달아 제압하고 아시아 국가 최초로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개최키로 함에 따라 한국은 동·하계 올림픽과 축구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지구촌 4대 스포츠 행사를 모두 유치한 6번째 국가가 됐다.

◇프로 스포츠 시대가 열리다=1982년 가장 먼저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MBC 청룡(서울), 롯데 자이언츠(부산), 삼성 라이온즈(대구), OB 베어스(대전), 해태 타이거즈(광주), 삼미 슈퍼스타즈(인천) 등 6개 팀이 리그에 참가했다. 매 시즌 성장을 거듭한 프로야구는 올해 kt 위즈의 가세로 10개 구단 체제로 확대됐고 한 시즌에 700만 관중을 동원하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1983년 시작된 프로축구는 우리 축구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국 축구는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아시아에서조차 힘을 쓰지 못했다. 82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이란에 0대 1로, 일본에 1대 2로 패해 예선 탈락하자 축구계에선 자성의 움직임이 일었고 이는 프로축구 탄생으로 이어졌다. 1983년 5월 8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한국 프로축구의 개막을 알리는 슈퍼리그가 시작됐다. 프로 2개 팀(할렐루야·유공), 실업 3개 팀(대우·포항제철·국민은행)이 출전해 다소 기형적인 모습으로 출범한 슈퍼리그는 9월 25일 마산에서 막을 내릴 때까지 성황을 이루며 프로축구의 초석을 다졌다. 2012년 승강제가 도입됨에 따라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과 2부 리그 K리그 챌린지로 나눠졌다. 2015년 현재 K리그 클래식에는 12개 팀, K리그 챌린지에는 11개 팀이 뛰고 있다.

이어 1997년 프로농구, 2005년에는 프로배구가 닻을 올렸다. 이로써 한국에는 4대 프로 스포츠 체제가 확립됐다.

◇세계적인 스타 탄생=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스포츠 지형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간 ‘선진국형 스포츠’로 여겨졌던 종목에서 세계적인 스타들이 쏟아진 것이다. 여자 골프의 박세리(38)는 1998년 7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발휘했다. 박세리는 연장 18번홀 워터 해저드 경사면 러프에 공이 빠지자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 쳐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서든데스 두 번째 홀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며 ‘IMF 한파’에 시달리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피겨여왕’ 김연아(25)도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미셸 콴(미국)을 보며 올림픽 금메달을 꿈꾼 김연아는 초등학교 6학년 때 5가지 점프 기술(토루프, 플립, 러츠, 루프, 살코)을 1년 만에 모두 익혔다. 김연아는 타고난 재능에 노력을 더해 은반을 평정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228.56점이라는 놀라운 점수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편파판정 끝에 은메달을 획득한 후 정든 빙판을 떠났다.

‘마린보이’ 박태환(26)은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수영 400m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여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선수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박태환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훈련에 전념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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