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엄마도 한국말 잘 몰라요”… 언어장벽에 갇힌 아이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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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시집온 숙자(가명·33)씨의 '코리안 드림'이 '악몽'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이는 많지만 성실해보였던 남편은 첫아이 출산 무렵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소한 잘못에도 폭력을 행사했고 술 취한 날은 매질이 더 심해졌다.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도 해봤지만 자신을 빼닮은 젖먹이 아들이 눈에 밟혔다. 한국에 시집 가 잘 사는 줄 아는 부모와 친지를 볼 낯도 없었다.

억척스러운 엄마, 비뚤어지는 아이

숙자씨는 2000년대 초반 결혼중개업자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경남 창원·김해 등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했던 남편은 열여섯 살이나 많았다. “결혼하면 먹고살 걱정은 없다”던 중개업자의 말을 믿은 게 화근이었다. 남편은 술에 취해 일을 나가지 않는 날이 많았다. 술을 먹으면 폭력적으로 돌변했고, 환각제에 취해 목을 조른 날도 있었다. 생활고에 베트남으로 일정액을 송금하겠다던 약속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식당이나 공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아내가 돈을 벌자 남편은 집에 눌러앉았다. 둘째 임신 때도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다행히 친정엄마를 닮아 생활력이 강했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창원시 변두리에 작은 식당을 차렸다. 숙자씨가 일했던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그에 대해 “손이 빠르고 부지런했다. 2명 몫을 해내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혹사한 몸은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더욱 서글픈 건 아들이었다. 아이는 보살핌을 받지 못해 학교에서 뒤처졌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건 숙자씨 아들뿐이었다. 또래보다 체격이 작고 말도 어눌했다. 친구도 없이 집에서 게임만 했다. 학교에서 담임교사가 각종 다문화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관리했지만 가정에서 돌봄이 안 돼 효과는 반감됐다.

아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어머니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 여파로 보였다. 또래와 주먹다짐을 하는 날이 많아졌고 어린 여동생에게도 폭력적이었다. 야단을 쳐도 먹히지 않는다. 숙자씨는 “아들이 야속하지만 돌봐주지 못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면서 “그래도 둘째 아이는 착하다. 그 아이 때문에 산다”고 했다.



정부가 조기 개입해야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사람은 올해 1월 현재 24만명에 이른다. 통상적인 연애를 거쳐 부부가 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으로 들어온 여성들이다. 급격한 산업화·도시화로 피폐해진 농촌의 남성을 위해 우리 사회가 ‘식구’로 맞아들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자녀는 빠르게 학교로 스며들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국내 출생 다문화학생은 지난해 말 기준 5만749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다문화학생(6만7806명)의 84.8%를 차지한다. 2012년 4만40명이던 국내 출생 다문화학생은 2년 사이 1만7458명이 불어났다. 지난해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각각 4만명과 1만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고교생은 같은 기간 2541명에서 5598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표 참조).

상당수 국제결혼가정의 국내 출생 자녀들은 조손가정 등 결손가정에서 나타나는 ‘결핍’을 안고 있다. 게다가 영·유아기에 어머니와 충분한 대화를 못하다보니 언어 습득이 더디다. 이는 학습 부진, 교우관계의 어려움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다르면 정체성 혼란도 겪는다. 한국외국어대 다문화교육원의 LG다문화학교 박종대 팀장은 “어려서 부모가 국제연애로 결혼한줄 알았다가 나중에 결혼중개업자를 통해 만날 걸 알면 자아존중감에 큰 상처를 입어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도 아이 교육을 다문화가정에 맡겨두지 않고 조기에 개입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다. 이미 학교에 들어간 인원이 7만명에 육박하는 만큼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다만 미취학 아동이 학교에 들어간 인원보다 배가량 많다.

교육부가 올해 시작한 다문화 유치원 시범사업은 주목을 받고 있다. 다문화 아이들은 국내에서 태어났더라도 한국어교육 환경이 일반가정보다 좋지 않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언어교육을 강화해 취학 전에 격차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다문화 유치원은 누리과정 내에서 언어교육을 강화하고, 언어발달 정도를 점검해 개별교육을 실시한다.

중앙대 강진구 교수는 “연구를 진행하며 만난 결혼이주여성 다수는 아이를 대학에 보낼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그러면 나중에 이 아이들이 어떤 계층으로 재편될지 뻔하다. 지금이라도 이런 사회적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이도경 전수민 김판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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