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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최석운] 한여름 낮의 자전거 여행

꿈 찾는 질주에는 폭염도 장애 안 돼… 계속 페달 밟으면 같은 풍경도 달리 보여

[청사초롱-최석운] 한여름 낮의 자전거 여행 기사의 사진
동해안 자전거길 강원도 구간이 개통됐다는 기사를 지난 6월에 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몇 년 전 내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양평에서 경북 상주까지 이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자전거로 이틀 만에 간 적이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문 라이더들에게는 하품 나오는 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즈음부터 작업실 출퇴근은 물론이고 길고 짧은 길들을 달리며 자전거에 빠져들었다.

작년에 이웃집에 한 시인이 이사 왔다. 그에게 자전거 타기의 행복을 ‘전도’했고, 양평의 아름다운 강변길을 같이 달리거나 양평 바깥에 있는 더 먼 행선지에 다녀오곤 했다.

그와 함께 ‘한여름밤의 꿈’ 같은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다. 동해안 자전거길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길을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먹고 싶으면 먹고, 머무르고 싶으면 머물고 떠나고 싶으면 떠난다. 각자 일인용 텐트를 짐칸에 매달고 최소한의 짐을 배낭에 꾸렸다. 준비는 끝났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경보도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았다. 꿈과 자유를 향해 마음은 이미 힘찬 질주를 시작했다.

동해안 자전거길은 곧게 뻗은 고속도로나 국도와는 달랐다. 크고 작은 포구와 작은 마을, 논밭과 언덕, 그리고 탁 트인 해안이 꼬불꼬불 연결되어 있었다. 길가에는 해당화와 배롱나무가 생명의 춤을 추고 있었다. 전용도로가 다 갖춰지지 않은 탓에 국도변을 아슬아슬하게 달리기도 했다.

햇볕이 작열한다. 흘러내리는 땀으로 온 몸이 젖는다. 수시로 물을 찾는다. 차가운 물이 금방 미지근하게 변한다. 이 더운 날씨에 무슨 자전거를 타느냐고 묻던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도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 해풍이 잠깐씩 열기를 식혀준다. 폐가 터져나갈 듯 헉헉거리며 올라간 오르막길의 마루에서 한순간에 내려올 때의 속도감과 청량함은 형언하기 힘든 쾌감을 안긴다. 에어컨을 켜고 창문을 닫은 채 쏜살같이 지나가는 자동차가 전혀 부럽지 않다. 짙푸른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열린다.

속초를 떠나 주문진에 왔다. 자전거를 맡겨두고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바다에 던졌다. 이리저리 미친 듯 소리치며 유영했다. 어둠이 내릴 무렵 한적한 모래밭에 텐트를 쳤다. 파도소리는 밤새 귓가를 맴돌았고 하늘에서는 안개꽃 같은 별이 피어났다.

아침에 눈을 떴다. 맑은 햇살 줄기가 폭포처럼 텐트 안에 쏟아져 들어왔다. 시퍼런 바다, 흰 파도가 눈이 부시다. 다시 출발이다. 포구마다 즐비한 횟집 사이로 하나씩 박혀 있는 커피 전문점이 인상적이다. 팥빙수를 먹는다. 아! 육체여, 너의 다리를 빌려 이 아름다운 풍경까지 왔으니 내 너에게 차가운 얼음물과 달콤한 팥알 같은 휴식을 주리라.

강릉에서 ‘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고양이가 있는 음식점에 들렀다. 지금까지 먹어본 콩국수 중에서 가장 진한 맛이 났다. 강릉시내를 우회하는 자전거길에서 만난 대나무숲과 아까시나무 그늘, 울창한 해송 사이의 고즈넉한 마을이며 때 묻지 않은 자연은 처음 보는 것처럼 경이로웠다.

정동진을 지나 수로부인에게 바쳐졌을 절벽 위의 꽃을 뒤로하고 옥계 금진해변에서 하룻밤을 더 묵고 망상, 동해를 거쳐 삼척에 도착했다. 여전히 햇살은 맑고 바닷물은 푸르고 바람은 상쾌하다. 바다를 보면 거기 푸르고 넓은 자유가 꿈처럼 펼쳐져 있다.

두 바퀴의 자전거에 올라타면 후진은 없다. 앞으로 앞으로 페달을 밟아야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삶도 그렇다. 지나온 길을 기억할 수는 있지만 그 길을 다시 갈 수는 없다. 평행우주처럼 비슷하나 다른 길이다. 그림도 그렇다.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다.

최석운(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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