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증오만 쌓아온 분단 70년 기사의 사진
옛 얘기를 꺼내 죄송하지만, 나의 국민학교 시절 광복절 때는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 일종의 의무였다. 방학이 시작될 때 선생님은 다른 고장에 가더라도 광복절에는 그 곳의 학교행사에 꼭 참석하라고 당부했다. 출석 도장을 찍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여름방학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에게 주어진, 확인하지 않는 숙제였다. 3학년 때 나는 외가가 있는 촌락의 국민학교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광복절 노래의 의미를 깨달았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그때까지 나는 “흙 다시 만져보자”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애들이 만날 하는 짓이 흙에서 뒹구는 것인데, 왜 흙을 다시 만져보라는 것인가. 그러나 다른 고장의 서먹서먹한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그 노래를 제창할 때, 나라 잃은 사람들의 내 땅에 대한 간절함을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다시 생각한다. 감격스럽게 부르던 그 노래의 마지막 구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의 반복된 의미를 우리는 지금 이어받고 있는가.

허물어진 공동체를 70년 만에 회복한 민족의 역사를 읽는다. 기원전 59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인구의 5분의 1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인들의 이야기다. 힘든 노역을 했던 그들은 바빌로니아인들이 시온의 노래를 요구할 때면, 자신들을 황폐하게 한 그들 앞에서 노래하지 않기 위하여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놓고 응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편 137장) 남달리 총명하여 왕궁에 끌려온 청년 다니엘과 친구들은 왕이 주는 기름진 음식을 거부하고 채식만을 고집하면서 초심을 지켰다. 그렇게 정체성을 지킨 그들은 끝내 시온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공동체를 회복했다.

우리는 어떤가. 한반도는 해방 직후 국토의 한가운데 분할선이 그어져 외국군이 관할한 지 70년, 남북한 정부가 각각 수립돼 공식적인 분단체제가 된 지 67년이 지났다. 그러나 남북한은 아직도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으며, 남다른 통일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다.

얼마 전 우리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소녀가 마을 변두리 비닐하우스 꽃집을 찾아갔다. 주인이 없자 소녀는 연락처 메모를 보고 전화를 했다. “제가 옛날에 이 꽃집에서 강낭콩 씨앗을 훔쳐갔기 때문에 사과하려고 왔어요.” 전화를 받은 아주머니는 “우리는 누가 강낭콩 씨앗을 좀 가져갔더라도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충분히 용서했으니 돌아가려무나”라고 말했다. 소녀는 편지를 두고 돌아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주머니는 서랍 속에서 편지 한 장과 5만원을 발견했다. “아주머니 7년 전 강낭콩을 가져간 이후 한 번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 꽃집 앞을 지날 때마다 자꾸만 그 일이 생각났고, 돈을 모은 다음에 말씀을 드려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사를 간 지금오히려 더욱 자주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주머니 용서해주세요.”

이 소녀에게 7년이란 양심의 결실을 맺게 한 위대한 세월이다. 남북한은 그 열 배의 세월이 지났어도 회복이 아니라 증오로 점점 더 틀어져간다.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도 날로 늘어난다. 지금 우리에게 북한이 붕괴돼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는 것 말고,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으로서의 평화통일 방안이 있는가. 통일이 진정 대박이라면 그 대박은 그냥 굴러오지 않을 것이다. 미울수록 증오를 털어버리고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손을 먼저 내미는 순전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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