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최승욱] 씁쓸한 안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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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어느 날. 퇴근 후 거실에 들어섰더니 아내와 4살 딸아이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딸아이가 찰랑이는 목소리로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연발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범죄예방 교육을 한 것 같다고 아내가 전했다. 언제쯤 말을 할까 싶던 녀석이 어느새 똑똑한 발음으로 말하는 모습이 신통방통했다.

“예∼쁜 아줌마가 예∼쁜 머리핀 사준다고 같이 가자고 하면 뭐라고 해야 돼요?”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착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맛있는 ‘까까’ 사준다고 같이 가자고 하면 뭐라고 해야 돼요?”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그날 저녁 세 식구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상황극을 반복했다.

입사 후 내리 2년을 사회부 사건팀에서 일했다. 취재수첩 속 세상은 거칠고 험하고 진실 되지 못한 사람들만 살아가는 세상처럼 보였다. 그 영향인지 아이가 말을 시작할 무렵부터 틈날 때마다 이른바 ‘안전 교육’을 시키곤 했다. 하지만 좀처럼 아이의 입에 “안 돼요”가 붙지 않아 속앓이도 적잖이 했다. 그래서인지 그날따라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조기 안전 교육’의 부작용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원래 딸아이는 누굴 만나든 인사를 잘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쌩끗 웃어줄 줄 알았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후에는 아파트 경비원과 미화원, 옆집 ‘오빠 엄마’를 만나면 어린이집에서 배운 ‘배꼽 인사’도 곧잘 했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안전 교육’에 더 열을 올리곤 했다.

그런데 어린이집 안전 교육을 전후한 시점부터 아이의 낯가림이 부쩍 심해졌다. 어린이집 교육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인지는 모르겠다.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쳤던 아래층 ‘언니 엄마’도, 만날 때마다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미화원 할머니’도 아이는 낯설어했다. 애써 인사를 시키면 잘 따라했지만 자주 엄마 아빠 뒤로 숨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사실 엄마 아빠는 딸아이의 모습에 안도했다. 묘한 안도감이었다.

동시에 아파트에서 마주쳤던 수줍은 표정의 다른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나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주로 먼저 인사를 건네곤 했다. 제한된 공간에서 만난 낯선 어른 때문에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건넨 인사는 종종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땐 예절 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았을 거라 판단했다. 사회가 이렇게 변해 버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섣불리 아이들과 그 부모를 탓했다. 부끄러웠다. 상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은 그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먼저 조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하다가 4살 아이에게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 사회가 됐을까. 이제 막 재잘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에게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는 말부터 가르쳐야 하는 사회가 됐을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봐야 할 아이가 낯을 가리는 모습에 남몰래 안도하는 이 사회는 ‘살 만한 세상’인가.

아마도 ‘아빠의 딜레마’는 이제 시작일 게다. 4살 아이에게 인사를 잘 하라고 가르쳐야 하나, 아니면 낯선 이를 경계하라고 가르쳐야 하나. 중·고생이 된 아이에게 꿈을 찾으라고 말해줘야 하나, 아니면 일단 ‘좋은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라고 말해줘야 하나. 대학생 자녀에게 성실히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녀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한 ‘끈’을 만들어줘야 하나. 사회인이 된 자녀에게 다소 부족하더라도 법을 잘 지키라고 조언해야 하나, 아니면 ‘티 나지 않게’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서 살라고 조언해야 하나.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은 꿈을 좇기는커녕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도 버거운 청년들의 현실 앞에 공허하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라’는 말은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따위’는 인사청문회 결격 사유조차 되지 않는 현실 앞에 무너진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아빠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고 가르칠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담겨 있을 진심(眞心)의 무게가 단 ‘1g’에 불과하다 한들 누가 과연 이 아빠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최승욱 정치부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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