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빈 들의 축제 기사의 사진
빈 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넓고 황량한 벌판을 말한다. 그곳은 큰 나무도 없고 작은 풀과 돌이 섞여 있는 메마른 땅이다. 바람이 불면 희뿌연 먼지가 날고 들짐승만 돌아다니는 곳이다. 빈 들의 일차적 이미지는 무섭고 섬뜩하다. 죽음과 무덤을 연상시킨다. 마치 악한 영이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며 사람을 유혹하고 멸망시키는 사망의 냄새가 나는 이미지다. 그러나 빈 들의 이차적 이미지는 세상과 단절된 한적한 곳, 묵상하기에 적당한 고요한 곳이라는 느낌이다. 좀더 낭만적이고 정서적이며 창조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빈 들에도 생명과 희망이 싹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북한이 목함지뢰 도발을 한 지 10여일이 지난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이 대치하는 비무장지대(DMZ) 빈 들에서 축제가 벌어졌다. 평화통일운동 공동체인 ‘밥 피스메이커’가 DMZ 도라산 평화공원에서 밥상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밥상을 펼쳐놓고 평화통일을 기원했다. 남북 최고 지도자의 밥상과 남북한 군인들의 밥상도 차려졌다. 비록 그 밥상의 주인 자리는 비어있었지만 일반 밥상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다지며 남북의 평화통일을 기원했다.

이 단체는 선언문에서 “남북한 어느 곳이든 가정의 행복은 밥상에서 시작된다”면서 “분단된 조국의 통일도 밥이 답이다”라고 선포했다. 왜 밥이 답인가. 밥은 생명이고 결속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공동체는 밥상에서 시작된다. 식구는 밥을 함께 먹을 때 불리는 사랑의 언어다. 밥상을 함께해야 가족공동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날 밥상 이벤트는 깊은 감동을 남겼다. 북한은 대한민국 백성들의 평화통일 염원을 20일 포탄 도발로 짓밟았지만 ‘밥 피스메이커’는 통일이 될 때까지 밥상 이벤트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인류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준 밥상축제는 2000년 전 이스라엘 북부 변방 갈릴리 바다에서 있었다. 바다 옆 빈 들에는 5000여명의 장정이 앉거나 서 있었다. 이들과 함께 빈 들에 앉아 강연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성들과 어린아이들까지 합하면 2만명은 족히 됐다. 그 군중 사이에서 얼굴에 아름다운 광채가 가득한 30대 초반의 예수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을 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빈 들에 모인 사람들은 해가 지도록 돌아갈 줄 몰랐다. 예수의 말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가슴속에서 뭔가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꿈과 희망과 기쁨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예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천국을 이야기하는 것을. 그러한 사람들에게 즐거운 밥상이 펼쳐졌다. 아무것도 없는 빈 들, 2만여명을 먹이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군중 속에서 찾은 음식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러나 예수가 펼친 빈 들의 밥상 축제는 2만여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

오늘 영적 빈곤을 겪고 있는 세상의 빈 들에 교회는 무엇으로 축제를 펼칠 것인가. 동성애와 동성결혼 합법화를 외치는 빈 들의 군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직장을 잡지 못해 알바인생으로, 방콕인생으로 사는 수많은 청년에게 무엇으로 희망을 줄 것인가. 돈과 권력과 탐욕과 음란의 세상축제 속에서 좌절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교회는 영원히 세상의 희망이고 생명의 원천이기에 세상 빈 들의 군중에게 생명의 축제를 펼쳐주길 바란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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