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전석운] 트럼프의 ‘한국 무임승차론’ 기사의 사진
남북대치 상황에서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도널드 트럼프가 현재 미국 대통령이 아닌 게 다행스럽다. 미 공화당의 대선 후보 1위를 달리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남북이 포격전을 주고받으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에도 한국의 안보무임승차론을 또 거론했다. 그는 21일(현지시간) 앨라배마에서 방송되는 ‘맷 머피 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미국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보내는데 미국은 얻는 게 없다”며 “미국은 한국을 돕는데, 왜 부자나라인 한국은 미국을 돕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지난달 사우스캐롤라이나 유세 때 주장한 안보무임승차론을 재론한 것이다.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한국은 지난해의 경우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경비로 전년도보다 5.8% 인상한 8억8600만 달러(약 1조578억원)를 부담했다. 트럼프는 이 금액이 너무 적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임승차론까지 제기할 정도는 아니다. 그건 동맹국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한반도 분단과 냉전의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트럼프가 한국의 안보무임승차론을 거론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11년부터 이런 주장을 한 걸 보면 착각에 따른 발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공화당 대선 후보 중 압도적인 1위를 달릴 만큼 영향력이 커진 뒤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가 공화당 후보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전문가들의 예언이 맞아떨어진다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파급효과다. 아직까지 한국의 안보무임승차론에 동조하는 다른 후보들은 없다. 트럼프의 발언으로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조짐도 없다. 오히려 같은 날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최윤희 한국 합참의장과 통화를 하면서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주한미군의 주둔에 대해 미국인 5명 중 3명꼴로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를 감안하면 트럼프의 주장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하다. 하지만 검증 안 된 그의 주장을 다른 후보들이 채택하거나 동조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이미 불법이민자 추방 같은 트럼프의 공약 1호는 공화당의 다른 후보들도 경쟁적으로 베끼고 있다. 트럼프 등장 이전만 해도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워하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는 트럼프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지율에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앨라배마 유세 현장에는 트럼프의 연설을 듣기 위해 3만여명이 몰려들었다. 이번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인파였다.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공화당 성향 유권자 중 57%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될 사람으로 트럼프를 꼽았다. 2개월 전 같은 조사에서는 트럼프의 후보 지명 가능성이 27%였다. 그의 인기를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다른 후보들도 그의 인기 공약을 앞다퉈 벤치마킹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사 다른 후보들이 한국의 안보무임승차론에 대해 선을 긋는다고 하더라도 차후 한·미 간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과도한 인상을 요구하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가 투자한 부동산은 서울과 대구, 부산 등 한국에도 6곳 있다.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켜서 보호하려는 대상에는 트럼프 같은 미국 기업의 활동과 이익도 포함된다. 그의 황당한 셈법과 주장이 확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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