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위철환] 신속한 재판 절실하다 기사의 사진
최근 두 가지 소식이 당혹스럽다. 하나는 30대 젊은 여판사가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다. 법조 선배로서 가슴이 아팠다. 다른 하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사법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이 2014년 기준 27%로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39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평균 신뢰도 54%의 절반 수준이자, 마약 범죄로 치안이 심각하게 불안한 콜롬비아(40위·신뢰도 26%)와 꼴찌를 다툰다는 분석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판사들이 과로사할 만큼 열심히 일을 하는데, 사법제도에 대해 불신감이 팽배한 건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인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은 전관예우, 무전유죄 유전무죄,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문 등을 들고 있다. 국민들이 사법부조차 강자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은 그동안 국민들이 체감해 온 잠재의식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법조인들이 반박해도 별 소용이 없다.

더불어 사법 불신을 유발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재판 지연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헌법 제27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헌법재판소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신속’이란 개념에는 분쟁 해결의 시간적 단축과 아울러 효율적인 절차 운영이라는 요소도 포함된다고 해석한다.

재판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신속한 재판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필자의 지인이 몇 년 전 소송을 제기했다. 장기간 재판 끝에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법원에서 아무런 소식도 없고 진행 사항조차도 알 수 없었다. 기다림에 지친 지인은 재판부에 “이제 재판에서 승소한다 하더라도 너무 오래돼 저에게는 아무런 실익이 없게 되었다”는 내용의 정중한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법조인으로서의 한계와 무력감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재판이 지연되는 연유는 사건의 폭주로 인한 업무량 증대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지만 ‘입법 미비’로 인한 경우도 있다. 2003년에 제기되어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세금 관련(법인세부과처분취소소송)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법원에서 1심은 피고 승, 2심에서는 원고 승, 3심은 피고 승으로 2심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파기 환송되어 다시 시작된 2심에서는 피고가 승소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세법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원고가 승소한 이후 원고가 제기한 재심 사건에서는 피고가 승소했지만 또다시 관련된 헌법재판사건이 진행되는 등 하나의 사건이 12년간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 소송이 십수년간 종국적 해결을 보지 못한 이유는 법률 해석권을 둘러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의 갈등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재판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 한정위헌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대법원은 법률 해석 적용권은 전적으로 법원의 권한이라고 본다. 문제는 두 기관이 하나의 사건에 관해 다른 결론을 내릴 경우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데에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시간과 돈을 들여 재판에 임한들 결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두 기관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국회가 입법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 사건에 대해 10년 이상 끄는 사법부를 신뢰할 국민은 없다. 분쟁 해결의 책무를 가진 헌법 기관들이 오히려 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구조로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재판의 지연문제를 해소하지 않고는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요원하다.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법부와 입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위철환 전 대한변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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