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불법체류자 자녀로 태어나… 서류에 없는 ‘유령 신세’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축구공은 정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우석(가명·13)이에게 유일한 친구다. 학생들이 빠지고 텅 빈 학교 운동장은 유일한 해방구다. 주말에 몇 시간이고 공을 차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평일엔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미인가 다문화 대안학교에 나간다. 수업을 마치면 서둘러 귀가한다. 방글라데시인 어머니는 몇 달 전 여동생을 출산했고 건강이 좋지 않다. 어머니가 아픈 날은 종일 동생을 돌본다. 방글라데시인 아버지는 지방 공장에서 일한다. 열흘마다 녹초가 돼 돌아온다.

우석이 기억에는 없지만 부모님은 한국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아버지는 기독교 계열의 신학대를 다녔다. 학비·생활비를 벌며 공부했지만 건강이 악화되면서 일이 틀어졌다. 어머니가 일하며 버티다가 비자가 만료되면서 불법체류자가 됐다. 우석이는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래도 여기는 종교가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거나 하진 않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우석이는 이곳저곳 초등학교를 옮겨 다니다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신분상의 불안함과 경제적 이유가 겹쳤다. 우석이는 자신처럼 살아야 하는 여동생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휴대전화를 갖는 게 소원이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대신 ‘아빠와 엄마, 여동생이 조금 덜 힘들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꿈이요? 수학이 재미있긴 해요. 하지만 빨리 커서 돈 벌어 부모님 짐을 덜어드리는 게 우선이에요.”

◇‘유령’ 같은 아이들=부모가 불법체류자란 낙인이 찍히면 아이들은 ‘유령’이 된다. 우석이 남매 같은 아이들은 우리 주변에 살지만 서류상으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복지·의료 혜택 등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불법체류자 네팔인 부모를 둔 인정(가명·15·여)이는 건강 체질이어서 잔병이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올 초 지독한 감기와 식중독에 걸려 고생했다. 약국에서 약을 사먹고 비타민 등으로 버텼지만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종교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이는 “한번 제대로 아파보니 나은 뒤에 두려웠어요.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라고 했다.

인정이의 언니(17)는 최근 한국인 남학생과 교제를 시작했다. 다문화센터에 봉사하러 온 고3 오빠였다. 인정이는 “(언니는) 요즘 정신이 나가 있다. 만날 웃으며 다니는데 나한테 얻어터져도 웃는다”며 웃었다. 인정이의 언니는 “오빠는 착하고 자상하다. 주말에 데이트하는데 주말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단속에 적발돼 쫓겨나면 어쩔 건가”란 질문에 “상상하기 싫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불법체류자의 자녀, 얼마나 될까=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를 보면 21만2596명(올해 6월 기준)이 불법체류자다. 지난해 같은 시기(18만7340명)보다 13.5% 늘어났다. 30대가 32.9%, 40대 27.2%, 20대 21.8%, 50대 10.1% 순으로 20∼40대가 대부분이다. 불법체류자 대다수는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연령대인 것이다. 이들은 정식 비자를 받아 들어왔다가 출국하지 않은 경우라서 통계에 잡힌다. 입국자료 자체가 없는 밀입국자를 포함하면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자녀는 통계가 없다. 외국에서 태어나 입국했던 아이들은 파악되지만 불법체류자가 국내에서 낳은 아이들은 자료가 전무한 실정이다. 시민단체나 종교단체에서 2만명 수준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국회에서 불법체류자 자녀를 음지에서 양지로 이끄는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지만 ‘불법을 용인한다’는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정부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1991년 비준했다. 협약에는 “초등교육은 의무이며 모든 이에게 무료로 제공돼야 한다. 일반·직업교육 등 중등교육을 장려하고 (중략) 무료교육이 필요하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불법체류자의 자녀라도 공교육의 문을 열어 놨다. 학교 주변에서 거주하는 사실만 증명하면 입학이 가능하다. 다만 보호자의 신분이 불안해 경제·정서적 돌봄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 일각에서 부모에게 특별체류자격을 주는 방안이 검토되는 이유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를 양산한다는 점, 준법의무가 있는 공무원들이 불법을 눈감아준다는 비판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다고 외면하기도 어렵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추후에 사회불안 요소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안산 구세군 다문화센터 최혁수 센터장은 “국회에서 법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정부도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됐다. 교육 시기를 놓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도경 전수민 김판 홍석호 기자 yido@kmib.co.kr

▶[다문화가 경쟁력이다] 기사 모두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