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노동개혁이 지지부진한 까닭 기사의 사진
노동개혁이 센 이슈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도 대통령은 이 문제를 걱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동개혁과 관련, “이제 더 이상 미루거나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노사의 책임 있는 대승적 결단을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일의 특별담화와 8·15경축사에서도 노동개혁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에게 노동개혁은 가장 공고한 후반기 국정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큰 관심을 쏟고 정부·여당이 밀어붙여도 잘 풀리지 않는다. 수개월간의 공백 끝에 겨우 사회적 논의 기구인 노사정위원회가 복원되는 정도다.

왜 이럴까. 속도가 나지 않는 까닭은 애초 내재됐다. 무엇보다 의제 설정 구도 자체가 잘못됐다. 정부가 생각하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임금피크제와 해고유연화다. 노동계로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그런데 이걸 사용자 단체,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기구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고 한다. ‘임금을 삭감하고 사람을 쉽게 자르는 일’을 당사자에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기구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선뜻 수용할 것으로 여겼다면 정부가 무능한 것이고, 반발을 감안하고도 밀어붙였다면 폭력적이다. 그나마 노동계 대표로 간주된 한국노총은 명실상부 노동계를 대표했다고 볼 수 없다.

제대로 진척되지 않자 정부가 부드러워졌다. 해고유연화는 잠시 미루고 임금피크제에 진력했다. ‘임금피크제→청년고용 증가→경제활력 제고’로 노동계를 압박했다. 그러나 여러 번 지적됐듯이 임금피크제가 곧 신규 채용증가를 반드시 담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 현상도 나타났다. 금융업계는 2005년에 거의 전 사업장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 여성근로자들의 비정규직화는 늘었고 외주용역은 확대됐다. 노동계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거부하는 이유로 드는 대표적 사례다.

노동개혁 과정에서 경영계가 고민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정년이 60세가 되면 기업의 부담이 115조원 늘어난다는 자료만 내놓고 임금피크제의 과실을 따먹을 생각뿐이다. 더욱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제시한 이 수치는 엄밀하지 않다. 보도에 따르면 정년 연장 혜택 근로자 수와 평균 급여를 곱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의 평균 퇴직연령이 52.7세이고 정년 이전 퇴직 비율이 67.1%라는 현실은 배제됐다. 노동개혁의 산고를 위무할 자기희생적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경영계가 노동개혁을 가로막는다는 비난을 낳는다. 정부가 고삐를 죄자 부랴부랴 대규모 채용계획을 발표했으나 비자발적 고용 전망이 얼마나 실천될지 장담할 수 없다.

정치권의 토끼몰이식 태도도 개혁 추진에 걸림돌이란 생각이다. ‘정권을 잃더라도 노동개혁을 하겠다’는 여당 대표의 발언은 너무 뻔한 정략적 수사다. 노동개혁이 성취되면 성과를 이뤘다고 내세울 것이고, 불발에 그치면 야당과 노동계의 반대로 경제 활력의 발목이 잡혔다고 비판하면 된다. 꽃놀이패를 바라보는 노동계의 반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노동계의 ‘양보와 희생’을 얻으려면 근로자들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 내 월급이 깎이면 내 자식들이 취업할 수 있다는 가시적 희망, 퇴직해도 의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재기가 가능한 취업시장 등의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당장 안 된다면 기대감이라도 품도록 정부와 기업이 과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이런 바탕에서 합의에 의한 노동개혁이 가능하고 또 그런 노동개혁이라야 경제 발전의 진정한 견인차가 될 수 있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