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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용희 (10) “기도로 병사들 섬기는 군종병이 되고 싶어요”

백골부대 훈련 뒤 인사장교 물음에 편한 사단 행정병 마다하고 자청

[역경의 열매] 이용희 (10) “기도로 병사들 섬기는 군종병이 되고 싶어요” 기사의 사진
이용희 에스더기도운동 대표(왼쪽)가 1981년 7월 강원도 철원 백골부대에서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사수인 하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81년 2월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5월 12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78년 여름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3년간 선교단체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터라 휴양소에 간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막내였다. 하지만 두 형 중 큰형은 레지던트 수련과정 중이었고 작은형은 의대 재학 중이어서 내가 제일 먼저 군대에 가게 됐다. 그래서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후 곧바로 경기도 의정부 101보충대로 옮겨졌다. 부대 배치를 앞두고 다들 긴장상태였다. “너희들은 운이 좋아서 수도권으로 배치될 것이다. 단 백골부대만 가지 않으면 된다.” 조교의 말에 동기들 모두가 좋아했다. 부대 배치를 받던 날 대부분 동기들은 군용트럭을 탔다. 나를 포함한 30여명은 전세 관광버스를 타게 됐다.

‘웬 횡재냐. 군대에서 관광버스까지 타고.’ 기쁨은 잠시였다. “멀리 전방으로 가는 병사는 트럭이 아닌 관광버스에 탄다.” 인솔병이 말했다. ‘아뿔싸!’ 버스가 38선 휴게소를 지나 휴전선 최전방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해골 모양이 그려진 백골부대 표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조교가 백골부대만 안 가면 된다고 했는데….’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동기들은 모두 버스 안에서 신세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동기는 “돈 있는 놈은 돈으로 빼고, 백 있는 놈은 백으로 빼고, 돈과 백 없는 우리만 백골부대에 끌려왔다”며 투덜거렸다. 누구는 조상 탓을 했다.

백골부대 신병교육대에 도착했을 땐 부슬비가 내렸다. 조교들이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관광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강도 높은 얼차려가 시작됐다. 막사까지 오리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막사 안에서도 계속되는 얼차려에 동기 몇 명은 쓰러졌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다행히 얼차려가 끝났다. 이어 정신교육이 있었고 얼마 후 취침에 들어갔다.

잠들기 전 군종병이 내무반에 들어왔다. “주님, 이곳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십시오.” 그는 우리를 위해 정성껏 취침기도를 해줬다. 동기들은 백골부대에 도착하면서부터 온갖 쌍욕만 듣다가 존댓말로 하는 기도를 듣고 다같이 울먹였다.

첫날부터 북한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대남방송 때문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 휴전선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남들은 논산에서 편하게 4주 훈련을 받는다던데….’ 강원도 철원 백골부대에서 유격을 포함한 6주간의 강도 높은 신병훈련이 진행됐다.

힘든 훈련을 다 마치고 자대 배치를 앞두고 있는데 사단본부 인사장교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인사장교가 신상카드와 나를 번갈아 봤다. 동기들보다 나이도 많고 몸도 약해 보이니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인사장교가 입을 열었다. “이용희! 너 어디로 가고 싶냐?”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사단본부 행정병이 제일 편한 보직이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뚱딴지같은 말이 튀어 나왔다. “군종병을 하고 싶습니다.” 인사장교가 신상카드를 뽑았다가 멋쩍은 듯이 다시 내려놓았다. 군종병은 인사장교가 아닌 군종장교가 선발한다. 나는 막사 뒤로 돌아가 땅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아니, 내가 왜 사단본부 행정병이 아닌 군종병을 한다고 했을까.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차다니. 군대에서는 좀 쉬다가 제대하려고 했는데….’ 한숨을 쉬며 후회를 하다가 갑자기 취침기도를 해준 군종병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주님께 기도를 시작했다. “주님, 취침기도를 해줬던 그 군종병처럼 저도 많은 병사들을 기도로 섬기는 군종병이 되고 싶습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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