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保革 아우르는 대북정책은 불가능한가 기사의 사진
남북의 치킨게임은 충돌 직전 남과 북이 동시에 핸들을 돌리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무박 4일간 힘겨루기 끝에 주고받기로 6개항의 합의사항을 도출해냈으니 어느 쪽도 치킨이 되지 않고 서로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그럼에도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내 담이 훨씬 셌다”며 자기편을 대상으로 무용담 자랑이 한창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언론브리핑에서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지뢰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와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카운터파트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얘기는 딴판이다. 그는 지뢰도발을 ‘남조선 당국이 만든 근거 없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리곤 한술 더 떠 “남조선 당국은 일방적인 행동으로 상대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정세만 긴장시키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동일 사건, 같은 문구를 두고 남북의 인식과 해석 차이는 분단 70년 세월만큼이나 크고 깊다. 북의 이런 태도로 볼 때 8·25합의가 제대로 이행될지 염려스럽다. 사실 8·25합의도 지뢰도발과 관련된 2, 3, 4항을 제외하면 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기존 합의사항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1, 5, 6항에 각각 규정된 당국회담 개최, 이산가족 상봉, 교류 활성화는 남북합의문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단골메뉴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조치임에 틀림없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남북은 그동안 수차례 8·25합의보다 높은 단계의 합의를 이뤘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천명한 7·4공동성명을 위시해 남북의 화해·불가침·교류협력을 선언한 남북기본합의서, 양측 정상이 직접 만나 서명한 6·15 및 10·4 공동선언은 남북관계에 한 획을 그은 남북 공동의 결과물이다. 특히 양측이 15개월간 논의 끝에 우리 측 국무회의 심의와 노태우 대통령 재가, 북측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연합회의 승인과 김일성 주석 비준을 거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의 나아갈 바를 규정한 바이블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합의대로 이행됐다면 남북은 벌써 통일 문턱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합의가 나올 때마다 국민들은 통일이 머지않았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근본 책임은 고비 때마다 핵 개발과 도발을 자행한 북에 있다. 하지만 남북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 남측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남북문제에는 여야, 보혁(保革)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이번처럼 북이 도발할 경우에는 하나가 된다. 하지만 대북접근 방식에 있어서는 이것만큼 차이 나는 분야도 드물다.

남북 상생과 공동번영을 가져다줄 것 같았던 6·15, 10·4선언은 퍼주기 논란 속에 정권이 바뀌면서 형해화됐다. 이렇듯 우리의 대북정책은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전두환)→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노태우)→민족공동체통일방안(김영삼)→햇볕정책(김대중)→평화번영정책(노무현)→비핵개방 3000(이명박)→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박근혜)로 포장을 바꾸며 정권의 성격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독일은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좌파 정권이 추진한 동방정책을 기민당의 헬무트 콜 우파 정권이 계승함으로써 통일을 앞당길 수 있었다. 통일이 대박 나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대북정책이 절실하다. 박근혜정부의 성과가 다음 정부에서 폄하되지 않기 위해서도 이 작업은 꼭 필요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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