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기획] 아픈 청춘… 5포→ 7포 넘어 ‘n포 세대’ 좌절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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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취업난에 시달리고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리는 청년은 ‘88만원 세대’로 불렸다. 이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3포 세대’라고도 했다.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 여기에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는 ‘7포 세대’가 등장했다.

최근 청년들은 다른 것도 다 포기해야 할 상황이란 뜻에서 스스로를 ‘n포 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학생 임찬묵(25)씨는 “나를 비롯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졸업 후 취직이나 결혼 같은 미래 문제에 걱정이 없다면 어려움도 웃으며 견디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졸업을 앞두고는 취직이 문제이고, 취직한 친구들을 보니 결혼을 걱정하고, 결혼한 선배들은 내 집 마련을 고민한다. 우리는 가치를 부여할 만한 건 뭐든 포기하도록 내몰리는 n포 세대”라고 말했다.

높은 현실의 벽은 ‘자조(自嘲)의 언어’를 양산한다. 젊은이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금수저’(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에 빗댄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없는 집에 태어나 기댈 언덕도 없는 청년이란 뜻이다.

‘흙수저 빙고’라는 게임도 나왔다. ‘알바 해본 적 있음’ ‘집에 비데 없음’ ‘집에 차 없거나 연식 7년 이상’ ‘부모님이 정기 건강검진을 안 받음’ ‘가계부채 있음’ ‘중고나라에서 거래해본 적 있음’…. 가로 세로 5칸의 빙고판에 이런 문장 25개를 채워 넣고 자신에게 해당되는 항목에 동그라미를 친다. 동그라미가 가로·세로·대각선 등 일직선으로 5개 연결될 만큼 많으면 “나는 흙수저네!” 하고 자조하는 놀이다. 블로그나 SNS에는 자신이 해본 흙수저 빙고 게임 인증샷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수한 교수는 27일 “이른바 ‘신음서제도’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분노나 박탈감이 자조와 조롱으로 이어지는 현상”이라며 “기성세대가 ‘노력’을 통해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인식하는 데 비해 청년세대는 노력보다 ‘물려받은 것’이 성공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현실적 어려움이 반영된 사고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청년들이 처한 어려움은 숫자로 드러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8∼24세의 빈곤율은 19.7%, 25∼29세는 12.3%나 된다. 60∼64세(20.3%) 다음으로 높은 연령대다. 청년실업률은 2012년 9%, 2013년 9.3%, 지난해 10%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거나 대학원 진학 등을 선택하면 실업률 통계에서 제외되고 있어 실제 체감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좁은 취업 관문을 통과해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해 20대 임금노동자 341만명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이 47.4%였다고 밝혔다.

이렇다보니 자조는 사회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말 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2014년을 달군 유행어’ 투표를 하자 ‘센송합니다’가 1위, ‘미개하다’가 2위를 차지했다. ‘센송합니다’는 ‘조센징이라 죄송합니다’라는 뜻이다. ‘미개하다’는 지난해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의 아들이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좌절한 청춘은 우리나라를 지옥에 비유한 ‘헬(hell)조선’이라는 말을 즐겨 쓰고, 탈출을 위해 ‘이민계(契)’를 만들기도 한다. 회사원 정모(25)씨는 이민계를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다. 북유럽이나 호주·뉴질랜드로 이민가는 데 필요한 목돈을 만들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정씨는 “친구가 이민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에 얘기했더니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다들 계를 만들고 모임을 가질 돈과 시간이 부족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 교수는 “자조·조롱을 넘어 탈출까지 생각하는 젊은이가 많아진 것은 한국사회에서 행복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라며 “공정한 기회와 규칙을 통해 경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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