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길 다시 가보니-임항] 북한산 정향나무는 얼마나 더 버틸까 기사의 사진
북한산 정향나무 씨앗. 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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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주말마다 운동을 겸해 북한산을 오른 지 30년 가까이 된다. 어느 코스로 갈 것인지를 고민할 때도 있지만, 대개 수년 단위로 정하는 3∼4개 탐방로와 그 변형을 따른다. 나무와 풀에 관심을 가지면서 달력에 맞춰 꼭 보고자 하는 ‘계절의 상징’들을 마음속에 품게 됐다. 예를 들면 가장 일찍 3월 중순 끝무렵에는 알싸한 생강나무 꽃향기를 맡으러 연화사 뒤편, 3말4초에는 귀룽나무 새 잎과 진달래, 4월말에는 층층나무 꽃을 찾는다. 4월 중·하순 산벚나무와 귀룽나무의 낙화, 그리고 계곡물을 뒤덮는 그 꽃잎을 볼 수 있는 명소도 있다.

지난 17일 서울 서북쪽 끝자락인 은평구 진관외동에 자리 잡은 삼천리골 탐방로를 찾았다. 이곳은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비교적 한적한 데다 철마다 볼거리도 적지 않다. 삼천사 계곡은 응봉능선과 의상능선 사이에 있는 물길이다. 조그만 폭포가 나오고 거기에서 왼쪽의 대남문으로 가는 길과 오른쪽 비봉으로 가는 길로 나뉜다. 대남문 오르는 길의 계곡이 시작되는 곳은 10월 말쯤 단풍이 일품이다. 그렇지만 절정이 일주일도 채 지속되지 않는 절기의 풍광에 방문 시기를 맞춘다는 게 쉽지는 않다. 때를 놓치면 가는 곳이 있다. 향로봉 턱밑의 포금정사터에서는 5월 초순에도 꽃을 자랑하는 산벚나무 고목 한 그루와 귀룽나무 고목 10여 그루를 볼 수 있다.

오래 된 숲을 걸을 때 100년 전, 200년 전 그곳을 자주 다니던 사람들의 호흡과 체취를 경험할 수 있다. 나무는 사람들의 날숨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스스로 산소를 방출해 사람에게 공급한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자주 걸었던 숲의 고목 곁을 걷는 과정은 가고 없는 조상의 육체와 영혼을 우리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수령 1100년가량의 용문사 은행나무가 원효대사나 마의태자의 숨결을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듯이 고목들은 숱한 세대를 연결한다. 북한산 고목에도 호랑이와 이를 향해 활을 쏘던 정조대왕의 숨결이 서려있다.

오른쪽 비봉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북한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루트였던 이 길이 1995년 재개방됐을 때에는 양치식물과 이끼들로 뒤덮여 맨땅을 보기 어려웠다. 여름에 뱀이 지나가기도 하고, 겨울에는 까투리가 새끼들을 일렬로 거느리고 산비탈을 오르는 것도 봤다. 지금도 비봉능선의 남쪽 탐방로들이 땡볕에 노출돼 있는 반면 이곳 탐방로는 그늘이 이어진다. 50분후 능선안부에 닿는다.

비봉능선을 따라 정향나무 10여 그루가 산재해 있다. 정향나무는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 흔했던 물푸레과 수수꽃다리속의 관목으로 향기가 좋아서 여인들의 향수, 약재 등으로 쓰임새가 많았다. 같은 수수꽃다리속으로 미국인에 의해 ‘미스킴 라일락’으로 둔갑한 털개회나무와 사촌뻘 되는 나무다. 백두대간 능선 길을 따라 산재해 있던 정향나무와 꽃개회나무 등은 개체수가 줄고 있다. 햇빛을 많이 받는 등산로 주변에 주로 분포하므로 사람의 답압에 취약하다.

매년 정향나무 꽃이 필 때쯤 유심히 살펴봤지만, 지난 6월 탐방로 바로 옆의 작은 개체들이 꽃을 피운 것은 올해 처음 봤다. 화사한 모습과 진한 향기는 탐방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늘질 때가 많은 곳인 데다 탐방객의 손을 타기 쉬운 곳이라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이번에 보니 씨앗의 결실 상태가 역시 좋지 않았다. 1983년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무렵에는 정향나무가 승가봉, 문수봉까지 꽤 많았다고 한다. 공단 송추분소 관계자에 따르면 도봉산과 사패산에도 정향나무가 많았지만 지금은 오봉에 5그루 정도만 남았다.

비봉능선 사모바위 부근 공터는 대동문 일대와 함께 북한산의 ‘어른 놀이터’가 돼 버렸다. 그 장소들은 개활지가 넓어서 특히 봄, 가을 주말에는 단체 탐방객들의 술판이 빼곡히 들어찬다. 그러나 북한산의 유원지화는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자초하는 측면이 크다. 우선 입장료 폐지 결정이 그렇다. 북한산국립공원 입장객은 연간 약 800만명에서 2007년 입장료 폐지 후 1000만명으로 늘었다. 탐방문화도 나빠졌다. 수십, 수백 명이 참가하는 동창회, 향우회, 기업 단합대회까지 북한산 꼭대기에서 하는 실정이다. 입장료를 받을 때는 꿈도 못 꾸던 일이다. 북한산 샛길은 338개 구간에 길이가 205㎞나 된다. 이에 따라 해가 갈수록 생태계의 파편화, 식생의 단조로움, 계곡 물의 고갈 등이 심화되고 있다.

승가사를 거쳐 구기동 계곡으로 내려오면서 생각한다. 승가사 뒤쪽 숲과 포금정사터의 산벚나무 고목들이 내 손자, 손녀들이 찾아올 때에도 건재할까. 그들이 내 숨결과 체취를 느낄 수 있을까.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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