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훈] 비정규직의 ‘덫’을 걷어내라 기사의 사진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함에 따라 노동개혁 논의에 다시금 불이 지펴졌다. 여러 개혁과제들 중 합의를 끌어내는 데 무엇보다 험한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핵심 쟁점은 비정규 고용 문제다. 지난 8월 대국민 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비정규 고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과연 노사정 논의 주체들은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

기간제 근로에 대한 규제 방식은 비정규 고용 문제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다. 시간제 근로, 파견 근로, 용역 근로 등 여타의 비정규 고용 형태 역시 대부분 기간의 정함이 있는 기간제 근로계약에 기초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기간제법은 기간제 근로를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을 최대 2년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출구’ 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부가 비정규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은 핵심 대안은 바로 이 기간제 근로의 활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해 ‘출구’ 규제를 더욱 완화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기간제 근로의 ‘남용’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할 경우에 한정해 기간제 근로의 활용을 허용하는 ‘입구’ 규제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비정규 일자리가 정규 일자리로의 ‘가교’로서 기능하기보다는 한 번 걸리면 헤어나기 힘든 ‘덫’으로 기능하는 현상이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될 정도로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 청년실업률은 10% 수준이나 비정규 일자리를 기피해 아예 구직을 단념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포함한 체감 청년실업률이 무려 22%에 이르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심하게 일그러져 있는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갓 발을 들여놓은 청년들에게 비정규 ‘신분’으로의 비자발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제도적 ‘덫’부터 걷어내야 한다. 비정규직을 안전판 삼아 정규직의 고용 안정과 고임금·고복지가 보장되는 왜곡된 시장 구조가 바로잡혀야 한다. 그 방안은 ‘상시·지속 업무 상시·지속 고용’의 원칙에 기초하여 ‘입구’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기간제 근로에 대한 규제 방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민간 부문을 선도한다는 취지에서 ‘상시·지속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 부문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공공 부문에서 향후 ‘상시·지속 업무’에 결원이 발생하거나 업무가 확대될 경우 해당 업무에 기간제 채용을 금지하고 정규직으로 충원할 방침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 정책이 민간 부문에서도 확실한 파급효과를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상시·지속 업무 상시·지속 고용’ 원칙에 기초한 기간제법의 개정이 요구된다.

단, 조건이 있다.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제정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의 최대 걸림돌로 부각돼 있는 사안들을 노동계가 수용하는 것이다. 현재 노동계는 이들 사안을 노동개혁 의제에서 아예 제외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경영계는 그렇게 된다면 노동개혁은 ‘속빈 강정’이 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상시·지속 업무 상시·지속 고용’의 원칙을 전제로 기간제 근로를 ‘입구’에서부터 규제하는 방안을 경영계가 수용한다면 그에 상응해서 내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한 이들 사안 역시 노동계는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사 간의 대승적 양보와 타협이야말로 근로자 전체의 고용보호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경영의 효율성 또한 담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덫’을 걷어내기 위한 노사 간 상생의 패키지 딜을 기대해본다.

김훈 한국노동연구원 명예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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