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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복실] 동정에서 동경으로

큰딸의 첫 출근에서 내 옛 모습 떠올려… 여성이 직장·가사 병행 가능한 여건돼야

[청사초롱-이복실] 동정에서 동경으로 기사의 사진
폭염이 하늘을 찌르던 2주 전 어느 날의 일이다. 큰딸이 생애 처음으로 직장에 출근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처음 갖는 직장이다. 졸업한 지 7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취직을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유는 많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원하는 직업을 가지려면 공부를 더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힘든 과정을 거쳐 들어간 직장이니만큼 더 기쁘고 값지다. 축하와 격려를 동시에 보낸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축하만 해 주기에는 앞으로 견디고 이겨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첫 출근을 하는 딸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어린 딸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면 길가에서 담소를 나누던 동네 할머니들이 우리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에구 저걸 어째. 새댁이 젊으니 이제라도 아들 하나 더 낳아야지.” 애석함과 동정의 눈빛이다. 친구들 모임에 가도 아들만 있는 친구들에게서 은근한 우월감이 엿보였다. 다들 아무렇지 않았는데 딸 둘 엄마의 괜한 자격지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바깥에서만 느낀 이야기가 아니다. 집안에서도 시댁, 친정 할 것 없이 아들 낳으라는 이야기를 백 번도 더 들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키워주실 것도 아니면서요.’ 아들이 필요하고 필요 없고를 떠나 당장 키우기도 힘든데 한가롭게 아들 타령이나 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되었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부모님이 계신데도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이가 있었다. 이혼한 가정도 아니었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사실은 쌍둥이 남동생이 있어. 함께 크면 남동생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내가 우리 집에서 안 살고 할머니 집에서 사는 거야.” 깜짝 놀랐다. 그 이야기를 우리 딸들에게 했더니 “말도 안 돼” 하고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그때는 그랬었다. 요즈음은 이란성 쌍둥이를 낳으면 어떻게 할까? 둘을 함께 키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만약 서로에게 안 좋다고 하면 옛날과 거꾸로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난봄 종영한 인기 일일 드라마에 나온 여주인공은 아들 쌍둥이 넷을 낳고 무척 속상해했다. 다시 딸을 낳으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옛날 같으면 아들 넷을 한꺼번에 낳으면 집안 경사라며 좋아했을 텐데. 이는 작가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뀌었다. 작년 연말 가족과 여행사 단체관광을 다녀왔는데 일행 중 삼 세대 대가족이 있었다. 딸 가족이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온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할머니의 딸과 사위 자랑은 그칠 줄 모른다. “우리 딸은 가끔 이렇게 여행을 보내준다우. 아들은 바쁘기도 하지만 실천을 못하네요.” 그러면서 내게 속삭이듯 덕담을 건넨다. “딸만 있는 것이 더 좋아요.”

다들 왜 딸이 더 좋다고 할까. 경제적인 이유를 떠나 소통과 대화가 된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딸이 좋다고 하지만 정작 딸들도 딸로 태어난 것이 좋다고 할까. 몇 년 전 여성 정치인이 “다시 태어난다면 곤충이라도 수컷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선망의 대상인 그녀였지만 그녀도 직장 내에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힘들다 보니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동정과 동경은 가운데 점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하늘과 땅 차이인데, 세월이 가면서 동정과 동경이 왔다 갔다 한다.

”딸이 둘이나 되니 얼마나 좋겠어요”는 요즈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흐뭇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씩씩하던 후배들이 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고 나면 당당하던 자신감 대신 힘들어 쩔쩔매는 지, 그 모습이 늘 눈에 아른거린다.

이복실 숙명여대 초빙교수·전 여성가족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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