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한 우물 파던 시대는 갔다… 기술 융합으로 승부 기사의 사진
지난달 20일 경기도 안산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홍은주씨(오른쪽)와 손승욱씨가 자신의 창업 아이템인 아기 욕조 구상도와 의료 내시경 장비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안산=김태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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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의 역사는 고(故) 서성환 회장이 22세이던 1945년 9월 5일 서울 남대문시장에 ‘태평양화학공업사’라는 점포를 내면서 시작됐다. ‘해방둥이’로 사업을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은 70주년이 지난 지금 ‘K뷰티’ 최전선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가 있던 지난 2분기에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24%, 38% 신장하며 고성장을 이어갔다. 지난달 20일에는 미국 포브스가 발표한 100대 혁신기업 28위에 오르기도 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청년 창업 열기는 광복 이후 어느 때보다 뜨겁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설 법인 중 30세 미만 대표자가 설립한 법인은 전년 동기 대비 28.7% 늘어 전 연령대를 통틀어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이들 청년 창업자들은 제대로 된 기반조차 갖춰지지 않았던 해방 직후 창업자들과 달리 각종 지원과 남다른 아이디어를 무기로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꿈꾸고 있다.

지난달 20일 경기도 안산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만난 홍은주(30·여)씨는 생후 8개월 딸을 둔 엄마의 경험을 살려 아기욕조를 생산하는 회사 창업을 준비 중이다. 고등학교 때 ‘CEO’가 들어간 이메일 주소를 썼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선뜻 창업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한국기계산업진흥원, 로펌 등에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 그만뒀다.

그러던 중 출산 후 영유아용품을 사용했을 때 느꼈던 불편함이 창업의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홍씨는 “혼자 아이를 목욕시켜야 할 때 욕조에 물을 담으면 무게가 꽤 나가 성인 남성도 들기 힘들다. 그런 불편함을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네 꿈이 CEO인데 불평만 하지 말고 제품으로 만들어보라’고 해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낙천적인 성격도 선뜻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홍씨는 “저는 힘든 일이 생길 경우 ‘어떤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런 힘든 일이 있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낙천적”이라며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회사명으로 정한 ‘라비드 마망(La vie de maman)’이 프랑스어로 엄마의 행복이라는 뜻일 정도로 자신부터 행복한 회사를 꿈꾼다. 그는 “일을 하면서 가치를 창출하고 행복하다면 유명 CEO보다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DESIGN(디자인) 36.5’ 손승욱(26) 대표는 고가 의료 장비를 기존 가격보다 20분의 1로 뚝 떨어뜨린 제품을 선보였다. 사명은 만든다는 의미의 ‘DESIGN’과 인체 적정 온도인 ‘36.5’를 결합해 적정 기술과 아이디어를 활용한 의료기기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호주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사촌형이 운영하는 동물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우연히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그는 “동물병원 의료기기를 보니 비싸긴 하지만 원리가 너무 간단했다. 의료기기를 쓰고 싶은데 못 쓰는 수의사들이 많다고 들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사업 배경을 설명했다. 진로로 창업을 생각해 왔던 것은 아니지만 사업이 갖는 가치에 주목했다. 그는 “사업은 우선 저의 생계수단이지만 의사나 수의사가 싸게 장비를 살 수 있고 환자도 보다 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정 지역 맛집 지도를 소개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이문주(28) ‘그리드잇’ 대표는 뮤지컬 배우를 준비하다 창업으로 진로를 틀었다. 벤처기업 인턴 시절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를 만들면서 재미를 느껴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회사 설립 이후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창업의 매력에 빠져 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먹는 즐거움을 알려준다는 것이 좋다. 사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은 매력적이다”고 털어놨다.

청년 창업 증가는 고용 환경 악화로 인한 생계형 창업도 있지만 대학에서 창업 관련 학과나 동아리가 늘어나는 등 창업 환경이 개선된 영향도 크다. 김의선 청년창업사관학교 전담교수는 “이전에는 직장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다 창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갈수록 창업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며 “해방 이후 창업한 1세대 창업자들이 아주 이례적인 소수였다면 요즘 청년 세대는 학교를 다닐 때부터 창업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어릴 때부터 IT 기기나 인터넷 사용 환경에 익숙한 세대가 관련 분야 창업에 뛰어드는 것도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하나의 기술에 특화되기보다 여러 기술을 융합해야 하는 산업 환경 변화에 청년들이 적응하기가 보다 수월하다는 것이다. 김대희 중소기업청 창업진흥과 과장은 “독자 기술 하나만 가지고 한 우물만 파던 시대는 가고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과 기술이 모여 창업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현길 최예슬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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