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산촌자본주의’ 추구하는 사람들 기사의 사진
제주시에는 승용차도 겨우 들어가는 시골동네 한가운데에 미니 밴드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갖춘 카페가 있다. 수준 높은 커피와 휴식을 제공하는 그 카페 주인은 수도권 한 도시에서 시민운동을 했었다. 최근 제주도에 귀촌 바람이 불면서 ‘취미형’, 혹은 ‘자아실현형’ 카페나 음식점이 많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카페 주인들이 원래 돈이 많다기보다는 욕망과 소비를 최소화하고 도시에서와 다른 즐거움을 추구하는 유형이라고 보는 게 온당하다. 먹는(마시는) 게 남는 것이다. 적게 벌고 자기 시간을 좀 더 갖는 쪽을 선호하는 ‘다운시프터(downshifter)’들인 셈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원제 ‘산촌자본주의’)는 다운시프터들이 이룩한 자급자족적 공동체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 산촌자본주의란 ‘예전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휴면자산을 재이용함으로써 경제 재생과 공동체 부활에 성공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례로 해발 1000m급 산들 속에 파묻힌 오카야마현 마나와시는 간벌목을 이용해 건축재를 만드는 제재소와 부산물인 나무 조각들을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매스발전소 덕분에 10여년 전의 빈사상태에서 바이오매스의 도시로 거듭났다. 에너지 자립도를 높임으로써 소득과 일자리 및 인구 증가라는 선순환이 시작됐다.

산촌자본주의는 시장경제 바깥에서 시작되지만 ‘머니 자본주의’와 동떨어진 원시적 경제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돈에 의존하지 않고도 물과 식량과 연료를 계속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서브(백업)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과의 유대관계, 그리고 가까운 곳의 풍요로운 자연과의 유대관계가 중요하다. 목재 펠릿으로 난방과 취사를 하고, 버려진 농지를 활용해 물고기를 키우거나 지역 토산물을 재배한다. 노인들이 텃밭에서 키운 채소는 그들이 먹고도 많이 남아서 썩어버리는데 이를 지역의 복지시설이 급식재료로 구매한다. 금융 전문가와 NHK 취재팀인 저자들은 말한다. “표면적 경제활동은 축소된다. 그러나 현실은 풍요로워진다.(…) 게다가 풍요로움은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다. ‘즐거움’과 ‘긍지’라는 ‘부산물’ 또한 ‘수확’할 수 있다.”

이 책뿐만 아니라 비슷한 주제를 담은 책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 모두 일본에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의 이 책들이 잘 팔린다는 것은 일본에서 다운시프팅이 사회적 현상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10∼30년 간격을 두고 일본의 사회현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다운시프터들이 큰 흐름을 이룰 때가 멀지 않았다. 완강한 저출산 현상은 그 시작일 뿐이다. 주택 구입 포기, 자동차 소비 둔화 등은 소득이 늘지 않아서 그런 측면도 있지만 소비의 거품 제거, 즉 소비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는 조짐으로도 읽힌다.

기업과 정부는 이윤과 성장률을 높이려고 가짜 욕망을 부추긴다. 성장물신주의를 부추기는 프로퍼갠더,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말은 쏙 뺀 채 장년층 임금을 줄이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거짓말, 설악산을 파헤쳐 케이블카를 세우면 지역경제가 산다는 감언이설에 속지 말아야 한다. 기득권층과 정부, 정치권은 기득권과 서로의 편의 봐주기(부당한 특혜)를 앞세우는 그들만의 리그를 스스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이중구조와 격차사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거짓 욕망에서 벗어나 시선을 자연과 이웃으로 돌리면 길이 보인다. 귀촌을 포함한 소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그때에는 기업과 정부도 부당한 기득권을 포기하는 쪽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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