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상근] 참회록 기사의 사진
나는 참회한다. 세시봉의 감미로운 노래에 취해 나의 젊음은 낭만적이기만 했다. “저 별은 나의 별”이라 노래했지만, 사실 서울의 밤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조용필은 내 삶의 작은 위로가 되었다. 삶이 마냥 아름다운 숲이라고 믿었던 나의 짧았던 생각을 참회한다. 나보다 성격이 급했던 친구들은 마이크를 잡고 ‘아침이슬’을 힘주어 불렀다. 좀 더 조급했던 친구들은 마이크 대신 화염병을 들었다. 나는 참회한다. 내 과격했던 친구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대부분은 지금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었고, 요령껏 부동산 투자에 눈을 돌린 친구들은 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표독한 수구세력으로 변해갔다. 친구들아, 너희들의 변절을 참회할 생각은 없니?

우리 세대는 선배들의 은덕을 톡톡히 입었다. 일제 강점기와 동족상잔의 참혹했던 전쟁을 온몸으로 버텨냈던 선배들의 희생 때문에 우리 세대는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1987년, 서울대 박종철이 물고문을 당해 죽고, 연세대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죽어갈 때 우리는 분기탱천하여 선배 세대를 몰아냈고 역사의 주인이 되었노라 호기를 부렸다. 나는 참회한다. 내 젊은 시절의 어리석었던 착각을. 그것은 혁명이 아니라 군사독재 타도라는 미명하에 전개되었던 세대 간의 갈등이었다.

1987년 체제의 정착 이후 우리 세대는 점차 나이 들어갔고, 수구 세력으로 대체되어 갔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그때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한 것이 아니었다.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면서 민주화를 외쳤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 자리를 달라는 외침이었다. 정작 갈구했던 자리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자리보전을 위한 쌍심지를 두 눈에 켜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은 귀족화되었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던 우리들의 외침은 박노해의 시와 함께 잊혀져갔다. 이제 노동운동은 기득권 사수에 목숨을 거는 이기적인 집단의 행보와 맞닿아 있다.

우리 선배 세대들은 정말 맨주먹만으로 일어섰다. 이병철과 정주영과 같은 인물들이다. 우리 세대에 그런 전설적인 창업자가 탄생했는가. 지금 한국 경제를 이끌고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2세, 3세들이다. 미래에셋과 카카오톡을 이끄는 두 창업자 정도 빼고는 새로운 업(業)의 개척자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 세대의 경영자는 대부분 하청업자다.

욕도 많이 했지만 삼김(三金) 시대를 계승하거나 발전시켜 나갈 만한 걸출한 정치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와 통일 한국의 미래를 꿈꾸며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는 우리 세대의 정치가가 있는가. 안철수는 ‘간철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권력에 줄을 대고, 모리배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정치인들이 창궐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을 외치고 세계 100대 대학에 들었노라 자랑하지만 노벨상 근처에 가본 우리 세대의 걸출한 학자도 전무하다. 복제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한 서울대 교수는 허당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리 세대는 이제 젊은 세대의 등골브레이커가 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고, 청년들이 취직자리가 없어 아우성을 치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내 자식 챙기기에 바쁘다. 수십 곳에 원서를 넣어도 면접보라는 연락조차 없는 이 팍팍한 세상에서 우리 세대가 그들에게 해 준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위로밖에 없었다. 나는 참회한다. 이런 무력한 글을 쓴 것에 대해. 그런 글을 써봐야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아내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나의 무기력을 참회한다. 이어서 날아드는 아내의 비수 같은 한마디. “남 탓 말고, 당신이나 잘하세요.”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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