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사회안전망 예산 앞세워 겁박하는 정부 기사의 사진
통일 이후 저성장·고실업 등으로 유럽의 병자라고 불렸던 독일이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1998∼2005년 집권)의 경제 처방책 ‘어젠다 2010’이었다. 핵심은 노동·복지 개혁안인 하르츠 법안. 2003년부터 2년간 시행된 하르츠 개혁의 초점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와 실업급여 축소 및 실업급여·사회부조 통합이다.

개혁안이 나온 배경 중 하나는 비대한 사회보장제도에 있었다. 일하지 않아도 굶을 일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복지제도 수술과 고용 형태 다양화 정책은 그래서 나왔다. 복지 혜택을 확 줄여 실업자들이 구직 활동에 나서도록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월 급여 400유로의 미니잡을 비롯해 단기·시간제 일자리가 대거 확대됐다. 결과적으로 11%대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이 5% 이하로 떨어지는 대성공을 거둔다.

‘유럽의 병자’가 ‘건강한 부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은 이러한 제도 개혁에 더해 독일의 전통적 가치이자 강점인 일자리 공유 시스템(해고 대신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제도), 노사 간 공동 의사결정제도, 노동자의 생산성 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세계를 뒤흔든 경제대통령들’). 양극화 심화라는 개혁 후유증 논란에도 불구하고 산업평화가 유지되는 건 경제주체 간 신뢰가 밑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독일 개혁 과정을 되돌아본 이유는 하르츠 개혁의 겉모양만 모방하려는 우리 정부의 철학 부재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저성장·고실업이라는 현상만 같을 뿐 역사적 배경과 발생 원인이 다름에도 정부는 입맛에 맞는 노동시장 유연성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상황이고, 일하려 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복지 수준은 낮고 사회안전망은 허술하다. 독일 수준의 노동 유연성 정도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이뤄졌다는 평가도 있다.

노동개혁을 위해 노사정 대화가 재개된 우리에게 하르츠 개혁안이 대타협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지언정 꼭 정답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 개혁의 정신과 기조를 좇아 우리 현실에 맞는 개혁안을 도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사·정 간 신뢰가 토대가 돼야 한다.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근데 작금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상대방을 자극하는 언사를 구사하기 일쑤다. 툭하면 대화 테이블에서 뛰쳐나갈 기세인 노동계도 그렇지만 첨예한 쟁점인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법률로까지 보장해 달라는 경영계는 한술 더 뜬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임금피크제에 목을 맨 정부다. 사회안전망 강화가 국가의 책무임에도 실업급여 확대 등 관련 예산을 무기 삼아 겁박을 가하니 할 말을 잃는다. 정부 예산안의 국회 제출 전날인 10일까지 개혁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지원책만 담을 것이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치졸하고 저급하다. 쟁점을 둘러싼 노사정 토론회가 7일 열리는데 협상 시한을 10일로 못박은 건 몰상식의 극치다. 여기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가세하고 나서니 어이가 없다. 그간 경제·노동정책을 얼마나 졸속으로 만들었기에 국가 미래가 달린 노동개혁안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내놓으라고 하는 건지.

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노사정위원장을 깔아뭉개는 짓이기도 하다. 김대환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추석연휴 이전을 대타협의 마무리 시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조급증에 걸려 이를 무시하는 정부의 안하무인은 도가 지나치다. 협상 자세조차 갖추지 못한 정부의 처사는 신뢰를 무너뜨려 노동개혁을 망칠 뿐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이라 하지 않았던가.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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