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심상정 정의당 대표 “진보가 가야 할 길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아래” 기사의 사진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너무 바빠 질문지를 훑어볼 겨를이 없었다”면서도 답변에 막힘이 없었다.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 진보정당의 핵심요직을 두루 거친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심 대표가 ‘밥 먹여주는 진보’를 선언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동희 기자
진보의 위기라고 한다.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이후 진보정치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고착화된 양당구도 속에 내년 총선에서 제도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관측마저 나돈다. 그 한복판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의 힘찬 날갯짓이 시작됐다. 지난주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더하기) 4개 진보세력의 ‘11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 선언’은 그 첫 결실이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심 대표를 만나 진보의 오늘과 내일을 물었다. 심 대표는 “진보가 가야 할 길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아래”라고 단언했다.

-대표로 선출된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선거제도 협상 국면이기 때문에 국민께 바로 화답하지 못했다. 승자독식제도를 강화해 정의당 같은 정당을 퇴출시키는 일은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로운 국회를 만들기 위해 단호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그러다 보니 민생문제에 전면적으로 다가가지 못해 안타깝고 국민께 죄송하다.”

-진보의 위기라고 하는데.

“어느 정치세력이든 단박에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없다. 당 대표 선거 때 싸우는 진보가 아니고 밥 먹여주는 진보를 선언했다. 이념이나 정파 싸움에 매몰된 정당이 아니고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적극 대변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사명이다. 그동안 진보가 위기를 맞은 것은 진보가 대변하고자 하는 지지자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좌도 우도 아닌 삶의 현장으로 하방해야 진보정당의 미래를 열 수 있다.”



-진보세력의 화학적 통합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유력정당은 진짜 정당, 군소정당은 압력단체라는 말이 있다. 진보세력을 재편하겠다는 것은 과거의 진보정당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여러 곳에서 치열하게 혁신하고 성찰해온 성과를 종합하겠다는 의미다. 지난 3년은 정의당이 정치의 본령에 섰다기보다 생존을 시험받아온 기간이다. 진보정당의 압력단체 시대를 끝내고 유력정당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선 전통적 지지자를 모아야 한다.”



-구 통합진보당과 ‘천정배 신당’도 통합 대상에 포함되는지.

“진보정치의 거듭된 실패 과정은 혁신의 과정이기도 했다. 진보의 결집은 혁신의 결과를 모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통진당 세력은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철저한 혁신의 과정이 선행돼야 하므로 통합 대상이 아니다. 천정배 신당에 대해선 아직 실체나 노선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1차 대상은 아니다. 다만 야권 전체의 혁신, 총선 승리를 위한 협력관계는 광범위하게 모색할 생각이다.”



-우리나라 보수는 어떤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나 정의화 국회의장 등은 건전한 보수다. 시장의 한계와 양극화 해결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노동에 대해서도 따뜻한 시각을 갖고 있다. 한국 보수에서 이런 분은 핍박받고 소외된 소수파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임에도 이명박정부와 궤를 같이하는 재벌 경제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주류 보수가 민생정치를 책임질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이 대화로 위기를 넘겼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해법은.

“평화적 방법을 통해 일촉즉발의 위기가 정리된 건 다행이다. 남북관계는 낙관도 비관도 가능한 기로에 서 있다. 핵과 미사일 문제에 있어 북·미 사이에서 대화 촉매자로서의 우리 정부의 신뢰는 많이 약화됐다. 대북 지렛대 역할이 9·19공동성명 발표나 2·13합의를 이끌어냈을 때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그래서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고 나아가 5·24조치 해제 등 경협을 전면적으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북 신뢰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미·중 균형외교를 하고 남북관계 당사자로서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명실상부한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린다.”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을 평가해 달라.

“신뢰는 외교의 결과이지 전제가 아니다. 대통령은 신뢰를 강조하는데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외교를 해야 그 결과로 신뢰가 확보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의 전제로 신뢰를 얘기하니까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최근의 대화 국면은 원칙의 승리가 아니라 유연성의 승리다. 새누리당이 얘기했던 호전적 언사나 강경대응 일변도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성과다. 고집을 꺾고 양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타협이다. 북의 재발방지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수 국민은 미흡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대화 협상엔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호성은 존중돼야 한다. 대통령이 이번에 보인 대화와 타협의 유연성을 계속 발휘해야 한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데 국민정서에 반하는 것 아닌가.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회가 되기 위해서다. 헌재가 결정한 평균가치 실현을 위해서도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 OECD 국가의 의원 1인당 평균 국민 수는 9만6000명인 데 비해 우리는 15만명이다. 국회에서 심의하는 규모가 700조원 가까이 된다. 의원 1인당 2조원 이상 심의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 견제, 예산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국민은 특권을 누리는 의원을 늘리는 데 반대한다고 본다. 세비삭감 등 특권 축소를 결단함으로써 일 열심히 하는 국회의원 늘리는 것이라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특권 내려놓겠다고 호언장담하다가 정작 하자니까 아무 말 안 하고 있다. 국민이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취지를 이해하지만 그걸 방패삼아 특권정치를 계속 유지하려는 양당의 속내도 알아야 한다.”



-비례대표 확대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지.

“먼저 무엇에 대한 비례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전문성, 계층 대표성은 부차적인 문제다. 유권자 지지에 비례하는 의석수를 보장하는 게 비례대표제의 근본 취지다.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구도일 수밖에 없다. 소선거구제로 인한 많은 사표를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혼합해서 운영하는 것이다. 이런 나라들 중에 우리나라의 비례대표 비율이 18%로 가장 낮다. 그럼에도 소선거구제의 불비례성을 보완하는 연동형이 도입되지 않고 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승자독식구조가 강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승자독식제도로 부당한 초과의석을 계속 가져갔고 진보정당 같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차단해 왔다.”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는.

“세 가지를 바꿔야 한다. 첫째,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득표율에 비례하는 의석수를 보장해야 한다. 둘째, 국회 교섭단체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 20석인 우리와 같은 높은 장벽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교섭단체제도를 없애거나 유지하려면 5석으로 해야 한다. 셋째,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을 상박하후로 바꿔야 한다. 진성당원이 내는 당비에 매칭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내년 총선 목표는.

“최대한 많은 후보를 낼 생각이나 숫자보다는 정의롭고 유능한 분을 많이 내세우려고 한다. 교섭단체를 목표로 한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만 도입되면 지금도 교섭단체는 가능하다.”



-야권 공멸을 막기 위해선 새정치연합과의 연대가 불가피할 것 같은데.

“문재인 대표를 만나 선거를 앞두고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살기 위한 이합집산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선 연대, 정권교체를 위한 협력은 적극 검토하고 있다. 여기엔 전제가 있다. 국민들은 무기력한 제1야당, 존재감이 부족한 진보정당 간의 살기 위한 연대엔 관심이 없다. 우선 새정치연합의 혁신 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정의당 또한 강하고 매력적인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선거 룰을 정하기 위한 3당 대표회담을 제의했는데 양당 반응이 시큰둥하다. 김무성, 문재인 대표가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마당에 심 대표를 끼워주지 않아 섭섭하지 않은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 교섭단체제도는 양당 특권정치의 상징이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라고 교섭단체 중심의 국회 운영은 존중한다. 그러나 선거제도 문제는 국회 운영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 룰은 모든 참가자가 결정해야 정통성이 보장된다. 원외정당까지 포괄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원내 3당 합의를 거쳐 선거제도를 마무리하자는 우리의 주장은 선거결과의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다.”



-박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가장 잘한 것과 못한 것을 하나씩 꼽는다면.

“가장 큰 문제는 폐쇄성이다. 대통령으로서 통합력이 매우 중요한데 워낙 접촉면이 좁다. 내가 19대 국회 들어와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세 번이나 만났는데 박 대통령은 한 번도 못 만났다. 대통령이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국민들의 삶의 현실을 직접 살피고 삶의 현실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를 느껴야 한다. 이를 정파적으로만 이해하니까 힘으로 통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정책적으로는 인사 참사, 리더십 측면에선 독선정치가 가장 잘못됐다. 가장 잘한 일은 한·중 관계를 궤도에 올려놓은 것이다.”



-대선에 도전할 생각은.

“대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정권교체를 위해 정의당이 대선에 책임 있게 임할 것이란 원칙은 갖고 있다. 우리 당을 매력적인 정당으로 만드는 게 급하다. 내가 강한 정의당을 얘기하니까 투쟁 잘하는 정당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내면이 단단한 정당, 젊은 정당, 혁신이 제도화된 정당을 만들고 싶다. 정치 캠페인만 함께하는 정당이 아니라 당원들의 생활문화가 공유되는 생활문화 정당으로 가야 한다. 노선이 진보적인 것을 넘어서 지금까지의 보수정당과는 다른 종류의 질 높은 정당을 만드는 게 대표로서의 목표다.”



-심 대표가 꿈꾸는 대한민국은.

“노력과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사회다. 청년세대가 느끼는 가장 큰 좌절은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만큼 대접받지 못하고, 능력이 있어도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사람 중심의 가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가치를 향해 어깨 걸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정의당이 꿈꾸는 정치다.”

만난 사람=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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