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경쟁력이다] 아이가 “바응와이 빔빔” 서툰 베트남어 응석에 외가 식구들 함박웃음 기사의 사진
LG다문화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10일 베트남 하노이의 ‘밧짱 도자기 마을’의 한 공방에서 베트남 전통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아이들은 폭염에도 반죽부터 유약작업까지 해보며 ‘어머니 나라’의 전통문화를 몸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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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우리 아기들이 왔구나. 이렇게 많이 컸어. 정말 예쁘게 컸네.”

트엉티안(62·여)씨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견디며 집 앞 골목길에서 꽤 오래 기다린 듯했다. 그는 한국으로 시집간 딸과 손녀·손자가 탄 차가 집과 가까운 곳에 편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맡아 놓고 있었다. 아이들이 탄 승합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한달음에 달려와 끌어안고 쓰다듬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맺혔다.

트엉티안씨가 최지우(12·여) 지원(7) 남매를 만난 건 5년 만이었다. 딸은 한국에서 베트남 여성을 상대로 화장품 판매를 하고 있다. 한국인인 사위도 장사로 바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이지만 먹고사는데 바쁜 딸 부부에게 아이들을 자주 보여 달라는 건 무리였다. 이를 달래려는 듯 집안은 남매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벽과 테이블 등에는 지우 남매의 갓난아기 때부터 최근 사진이 빼곡했다.

지우는 외할머니를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서먹했다. 트엉티안씨가 끌어안으면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뺐다. 지원이는 금방 적응했다. 어머니에게 배운 서툰 베트남어로 “바응와이 빔빔(할머니 과자 주세요)”이라며 어리광을 부렸다. 외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미리 준비해 놓은 과자를 잔뜩 꺼내왔다. 지켜보던 외할아버지 옹와이(64)씨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쏟아지는 ‘한국 예찬론’=트엉티안씨는 지우 남매와 한국에서 온 손님에게 한국 칭찬을 늘어놨다. 트엉티안씨는 지우가 태어났을 때 딸의 산후조리를 돕기 위해 4개월가량 한국을 방문했었다. “한국은 날씨가 좋고 거리가 깨끗하다. 지하철과 버스도 편하고 택시도 정확하게 온다. (재래)시장도 너무 깨끗했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예의바르고 친절했다.”

베트남의 공기업 간부로 일하다 최근 퇴직한 옹와이씨는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세계적으로 교육이 발달한 나라로 알고 있다. 아이들이 잘 크고 있어 고맙다. 특히 아이들이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어 감동했다”고 했다. 노부부는 쉼 없이 칭찬을 이어갔다. 한국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을 딸을 위해 ‘조금이라도 예쁘게 봐 달라’는 의미로 읽혔다. 지우의 이모(32)는 “나도 결혼해 분가한 탓에 어머니, 아버지가 적적했는데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좋았다. 아이들이 밝아 기쁘다”고 했다.

지우 남매의 베트남 방문은 지난달 9∼17일 ‘LG 다문화학교’가 진행한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하나로 이뤄졌다. LG그룹은 2010년부터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한국외대 등과 다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카이스트와는 ‘과학 인재’, 한국외대와는 ‘언어 인재’ 과정을 운영한다. 여성가족부의 ‘언어영재교실’, 교육부의 ‘글로벌브릿지’ 사업 등의 ‘롤모델’이 된 프로그램이다. 언어 인재 과정 중 하나인 외갓집 방문 행사는 11일 지우의 외갓집이 있는 하이퐁시에서 열렸다. 하이퐁은 베트남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수도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동쪽으로 2∼3시간 거리에 있다.

◇“어머니 나라가 자랑스러워요”=베트남 해외연수에는 지우를 포함해 초·중학생 4명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어머니 나라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10일에는 하노이의 ‘밧짱 도자기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 전체가 도자기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곳이다. 도자기 공방만 100곳이 넘는다. 15∼17세기 도자기 수출 등으로 번성했던 지역이다.

아이들은 소박한 느낌의 베트남 전통백자를 만들어봤다. 이 지역 전통 도예가의 지도를 받아 반죽 만들기부터 유약을 바르는 작업까지 직접 해봤다. “가장 잘 만든 사람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인솔 교사가 제안하자 한 아이가 ‘최신형 휴대폰 주세요’라고 당돌하게 요구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를 주려고 도자기로 재떨이를 만든 서정민(13)군은 ‘조금만 피우세요’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서군은 “여기 도자기 시장과 전시된 도자기 작품을 봤는데 그릇뿐 아니라 동물 인형까지 종류가 다양해 놀랐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베트남과 유럽의 건축양식이 융합된 국립역사박물관, 호찌민 박물관, 옥산사, 진국사,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유명한 하롱베이 등을 방문했다. 아이들은 명소들을 다니는 틈틈이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었다. 그동안 익힌 베트남어로 시장에서 장을 보고, 전통 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인솔 책임자인 LG다문화학교 박종대 팀장은 “다문화 아이들은 성장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아이들에게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외갓집의 따스함과 어머니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성장하는 데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노이·하이퐁=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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