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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최범] 건춘문, 영추문

경복궁에는 광화문만 있는 게 아니다… 복합적 접근으로 문화시설 장소성 살려야

[청사초롱-최범] 건춘문, 영추문 기사의 사진
“문화부 가주세요.” “어디요?” “미국대사관 옆이요.” “아, 네.” 지금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들어섰지만, 각종 회의 참석차 문화부 출입이 잦던 시절 택시를 타고 문화부로 가자고 하면 알아듣는 기사가 없었다. 대한민국 문화부보다 미국대사관이 더 존재감 있는 현실이 씁쓸했다.

이제는 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역사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옛날 서울고등학교 자리라고 말해야 알아들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문화의 정확한 주소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서울시내에서 통의동이나 사간동 방향으로 갈 때도 짜증 나는 일이 생긴다. 매번 경복궁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외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참지 못하고 택시 기사에게 역정을 냈다. 아니 건춘문이다, 영추문이다, 하면 될 것을 왜 매번 광화문 왼쪽이니 경복궁 오른쪽이니 해야 합니까, 귀찮게시리. 다행히 기사 양반이 순해서 네, 네, 손님 말씀이 맞네요, 라고 응대해주었지만, 정말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경복궁에는 광화문만 있는 게 아니다. 왜, 건춘문과 영추문이라는 이름은 사라진 것일까. 굳이 어느 방향에서 접근하는가와 상관없이 건춘문 갑시다, 또는 영추문 갑시다, 하면 될 것을 경복궁 오른쪽이니 왼쪽이니 하는 일이 번거롭고 허허롭다. 접근하는 방향에 따라서 왼쪽이 되고 오른쪽이 되곤 하지 않는가. 건춘문 앞에는 이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라는 확실한 랜드마크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기무사 앞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 아닌지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동십자각에서 민속박물관으로 가자면 경복궁 돌담길을 걸어가야 하고 그러다 보면 건춘문을 지나게 되지만, 건춘문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문, 사실상 담이 되어버린 문일 뿐이다. 건춘문 반대편인 영추문도 마찬가지이다. 정철의 가사 ‘관동별곡’에 “영추문 들이 달아 경회 남문 바라보며…” 하는 바로 그 영추문 역시 이제 청와대 가는 길에 스쳐 지나가는 존재감 없는 존재일 뿐이다. 영추문과는 길 하나 건너고서도 멀찍이 떨어져 있는 청운초등학교 담벼락에만 무성의한 ‘관동별곡 기념비’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왜 건춘문 앞에는 건춘루나 건춘슈퍼가 없는 것일까. 왜 영추문 앞에는 영추회관이 없는가. 건춘문 대신 기무사가, 영추문 대신 청와대가 막아버린 것일까.

미국의 도시학자 케빈 린치는 ‘도시의 이미지’에서 도시가 도로, 경계, 지역, 결절점, 랜드마크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도시는 마음속에서 이렇게 구분된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도로와 경계, 지역과 결절점이 분명하지 않은 도시는 혼란스러우며 명쾌하게 인지되지 못한다.

물론 도시는 공간만이 아니라 역사라는 시간도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복잡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한 도시의 이미지가 불분명하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기가 어렵다.

서울의 문화 시설들은 접근성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존재감 자체가 약하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머릿속에 이미지로 자리 잡아야 한다. 머릿속 지도에 없는 것들은 존재감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시를 지나치게 랜드마크 중심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하지만 랜드마크 만이 아니라 도로, 경계, 지역, 결절점도 중요하다. 건춘문과 영추문을 잃어버린 경복궁은 그저 광화문 안에 있는 건물일 뿐이다. 문화 시설의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는 굳이 추가 설명을 하지 않고서도 그냥 영추문으로 갑시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갑시다, 라고 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최범(디자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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