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용희 (22) UNDP 그만두고 ‘이대 다락방’ 총무직 맡고 보니…

그동안 모임 줄고 영적으로 많이 침체… 대학생들 집회 후 술집으로 향하기도

[역경의 열매] 이용희 (22) UNDP 그만두고 ‘이대 다락방’ 총무직 맡고 보니… 기사의 사진
이용희 에스더기도운동 대표(왼쪽)가 1997년 5월 전재옥 이화여대 다락방전도협회 사무총장(앞줄 왼쪽 두 번째), 협회 간사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목회자도 아닌 내가 이화여대 다락방전도협회 총무라는 직책을 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2주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전재옥 이화여대 다락방 사무총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1996년 여름은 북한을 위해서 63일 동안 매일 드렸던 기도와 릴레이 금식기도, 전국 5만 교회에 북한의 참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까지 간병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어려운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아버지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총무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적합하지 않았다. 2주가 지났다. “사무총장님, 제가 풀타임으로 총무직을 맡긴 어렵습니다. 대신 지금 맡고 있는 유엔개발계획(UNDP) 컨설턴트직을 내려놓고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겠습니다. 그래서 다락방 총무와 교수직을 병행하며 섬기겠습니다. 학기 중에는 1주일에 3일을 이화여대 다락방에 와서 일하고 방학 때는 매일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신도이므로 자비량 사역자로 일하겠습니다.” 당시 나는 UNDP 컨설턴트를 하면서 경원전문대학 무역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UNDP에서 사표가 곧바로 처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96년 9월부터 이화여대 다락방 총무와 UNDP 컨설턴트 일을 동시에 하게 됐다. 총무직 결정을 앞두고 많이 고민했지만 맡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서강대 재학시절 이화여대 다락방에서 받았던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총무직 수락 여부를 놓고 기도할 때 대학 2학년 시절 농촌 전도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예수의 제자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또 대학생연합회 회장을 하면서 전국의 농촌 전도팀을 섬기고 대학생 후배들을 가르쳤던 소중한 기억들이 생각났다. “그래, 믿음의 고향이자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훈련시켜준 이화여대 다락방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예!’ 하고 순종하는 것이 맞다.”

당시 다락방 대학생 모임이 영적으로 많이 침체돼 있었다. 후배들에게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총무직을 수락한 뒤 97년 봄 학기부터 대학에서 전임교수로 일하게 됐고 지금까지 가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총무로 부임해 보니 이화여대 다락방은 내가 대학생 때 활동하던 선교단체가 아니었다. 과거에는 8개의 대학생 모임이 있었고 200∼300명 정도가 20여개 팀을 꾸려 전국으로 농촌 전도를 나갔었다. 그런데 내가 총무를 시작했을 때는 대학생 모임 수가 대폭 줄어 있었다. 농촌 전도 참가자도 70∼80명밖에 되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학생 모임의 신앙 열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떤 대학생 모임은 집회 후에 술집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악을 전공한 찬양 모임은 예배 때 찬양 후 설교도 듣지 않고 곧바로 나가버렸다. ‘자신의 역할은 찬양이니 설교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영적으로 침체된 모임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새롭게 모임을 개척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유학과 직장생활로 이화여대 다락방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다.

고려 말 신하였던 길재가 조선이 들어선 이후 고려의 융성했던 수도 개성이 쇠락한 것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끼며 지었던 시조가 떠올랐다. ‘오백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옛날 그대로 변함없다)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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