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북한에 지성인이 살아있는가 기사의 사진
외신에서 전하는 시리아 난민행렬을 보면서 북한을 떠올린다. 지금 시리아는 독재정부와 반군,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 등이 얽히고설켜 오랜 내전을 벌이는 동안 많은 국민이 학살당하거나 굶어 죽었다. 2011년 이후 400만명 이상이 국외로 탈출해 난민이 되었다고 한다. 서방 선진국에서는 난민을 받아주는 것 외에 시리아를 근본적으로 도와줄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도를 넘은 야만이 극성을 부리는 나라는 도와줘 봐야 오히려 더 심한 야만을 부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후반 아프리카에 대기근이 번질 때 국제구호단체들이 손을 잡았다. 그러나 서방의 자비의 손길은 굶주린 아프리카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구호물자를 장악한 군벌은 더 막강해져 미군을 잡아 잔혹한 방식으로 죽였다.

지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얼마나 잔인해지는지, 그 후진성은 얼마나 오랫동안 부작용을 부르는지를 우리는 아프간 사태에서도 보았다. 파키스탄 출신 아프간 전문기자 아메드 라시드의 저서 ‘탈레반’에는 카불 중심가 외교관 영내에 숨어있던 모하마드 나지불라 전 아프간 대통령이 탈레반 5인방에게 체포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996년 9월 28일 새벽 1시 나지불라를 사로잡은 탈레반은 그를 대통령궁으로 데려가 거세한 다음 스리쿼터에 매달아 대통령궁을 세 바퀴 돌았다. 새벽에 시민들이 콘크리트 전주에 매달려 있는 나지불라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의 고환은 터져있었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클라이맥스는 그리스 연합군 장수인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총사령관 헥토르의 쇄골 밑으로 창을 꽂아 넣는 장면이다. 전투에서 이긴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한 친구의 원한을 달래려 그의 시신을 자신의 진영으로 끌고 온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헥토르의 발목뼈와 근육을 갈라 그 사이로 가죽끈을 넣어 묶은 후 전차에 매달아 끌고 오는 방법이다. 헥토르의 아비가 아들 시신을 찾기 위해 아킬레우스 함선을 찾아가 담판을 벌이는 대목은 ‘일리아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묘사로 이루어져 있거니와, 시신을 끈으로 묶어 끌고 오는 잔인한 수법은 실제 역사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 바 있다.

지난 8월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 공동보도문 합의 이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인민군 수뇌부를 경질 또는 숙청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김정은 집권 이후 엘리트 정치인 30명 이상이 제거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은 핵심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을 비롯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국가장의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상위 50인 가운데 이영호 전 참모장, 김영춘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절반가량이 사라진 것으로 관측한다. 1990년대부터 남북 관계를 총괄했던 최승철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를 지낸 권호웅, MB정부 출범 이후 대남사업의 2인자 반열에 올랐던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천안함 폭침 이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담판협상 대표로 나섰던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역시 사라졌다.

김정은의 리더십과 통치 스타일이 드러나면서 그의 공포정치를 두려움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북한은 자체적으로 멸망할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에는 국가의 미래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조언할 수 있는 지성인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면 김정은의 미래는 없다. 지금은 시간도 국제정치 역학도 그의 편이 아니다. 공포정치는 내부에서 폭발하기 마련이다. 스리쿼터에 끈으로 묶여 땅에 끌려가는 나지불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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